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 )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주생활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후기 고성이씨 관련 주택. 주거건축.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安東 固城李氏 塔洞派 宗宅)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유산(1984년 01월 14일 지정)
소재지
경북 안동시 임청각길 103 (법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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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후기 고성이씨 관련 주택. 주거건축.
개설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성이씨 탑동파의 종가집으로 1700년대에 초창되었으며, 안채 · 사랑채 · 북정 등이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 조성된 양반사대부 주택이다.

역사적 변천

현 소유자 이찬형(李贊衡)의 11대조인 이준식(李俊植)이 안채를 건립하고 이어 사랑채를 건축하던 중에 죽자, 그의 손자 이원미(李元美)가 완성하였고 대청(大廳: 영모당)도 건축하였다. 대청의 북쪽에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 북정(北亭)은 소유자의 7대조인 이종주(李宗周)가 1775년(영조 51)에 건립하였다. 1824년(순조 24년)에 대수리를 하였고, 1991년에는 안채의 정침을 고쳐 지었다.

내용

안동시 법흥동 영남산(嶺南山)의 동쪽 기슭에 작은 계류를 끼고 있는 넓은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뒤꼍의 숲이 우거진 야산과 북정 앞을 흐르는 계류 등의 자연환경을 잘 살려서 주택을 배치하였다. 또한, 연못과 화단 등을 곁들여 조화를 도모함으로써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산간저택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잡석으로 축대를 높이 쌓은 위에 지어진 안채의 중문간을 들어서면 방형의 안마당에 이르게 되고, 안채 정면에는 마당 쪽을 향해 4칸 대청이 자리 잡고 있다. 대청의 오른쪽에는 골방과 안방이 모두 4칸 길이로 마당 쪽으로 길게 내밀었으며, 그 앞에 부엌 2칸을 더 달아내어 앞채에 관입(貫入)되었다.

부엌의 끝칸 오른쪽으로 앞채를 2칸 연장하여 돌출시켜 봉당과 부엌방을 설치하였다. 이것과 대칭으로 안방 윗머리의 골방 오른쪽에 마루방(현재는 부엌으로 개조하여 사용함)과 동녘방을 돌출시켰다. 이 양끝을 토담으로 연결하고 사주문(四柱門)을 세워서 뒤꼍 마당과 구분하여 장방형의 내밀(內密)한 마당을 만들고 한 구석에 장독대를 설치하였다.

대청의 왼쪽에는 2칸통(間通)으로 방을 배치하고 그 앞에 마당 쪽으로 3칸을 누(樓)집으로 뻗어내어서 누하는 통내간(通來間)과 헛간 2칸을 두었고, 누상에는 긴 마루방을 꾸며 고방(庫房)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중문간의 왼쪽에는 방과 부엌 1칸씩과 고방 2칸이 배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저장고로 쓰이고 있다.

사랑채는 2칸 크기의 마루방과 온돌방 2칸이 마주 합한 4칸 집으로, 마루방을 중심으로 3면에 동마루를 돌리고 계자각(鷄子脚: 풀무늬를 새긴 가는 기둥)을 설치하였다. 마루방에는 ‘정우재(淨友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청은 앞에 방형의 넓은 연못이 있는 별당 건물이다. 그 왼쪽에는 정면 · 측면 각 2칸의 큰 마루방이 꾸며져 있고, 오른쪽에는 정면 1칸에 칸반 길이의 온돌방과 그 뒤쪽에 반칸 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물마루를 깐 마루방에 ‘영모당(永慕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전면 · 측면과 뒷면에는 동마루를 놓아서 내 · 외부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였다.

북정은 서쪽에 흐르는 계류를 향하여 서향으로 배치하였는데, 그 평면구성은 온돌방 2칸과 마루방 1칸이 一자로 배열되었으며 중앙에서 계류 쪽으로 누마루 1칸을 돌출시켰다. 누마루의 삼면에는 헌함(軒檻: 좁은 마루)을 돌렸는데 양측칸 앞의 쪽마루에까지 난간이 이어졌다.

집의 구조를 살펴보면, 안채 대청은 자연석 초석 위에 네모진 기둥을 세우고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상부 가구는 5량가(五樑架)로 동자주(童子柱)와 대공(臺工)을 세웠다. 대청 뒷벽의 각 칸에는 중앙에 두 짝 열개널문을 내었는데 문틀의 중앙에 중간설주가 각각 서 있다.

사랑채 마루방의 상부 가구는 5량가인데, 충여 위에 첨차(檐遮)와 초각(草刻)된 대공을 놓아 외기(外機)를 올려놓았고 중도리 높이에서 우물반자로 처리하였다. 정면의 마루방과 온돌방의 살문에 중간설주가 서 있다.

대청의 상부 가구는 5량가로 종보 위에는 사다리꼴 판대공(板臺工)을 세워놓았다. 방과 마루방에는 문턱이 높은 두 짝 열개문을 설치하고 중간설주를 세웠다. 특히 마루방에는 큰 범살문을 달아 절간문처럼 외부로 들면서 열 수 있도록 설치하였는데 이는 보기 드문 수법이라 하겠다.

특징

판문에서 장지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경향을 살필 수 있는 문의 중간설주가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이 집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주변의 자연환경과 건물을 교묘하게 조화시키면서 사대부저택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구조 및 수법과 전통양식이 보존되어 있는 유구로 전통주택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편 상(문화재관리국,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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