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목판본. 그의 아들 계은(季殷)이 초간본을 간행한 듯하나 간년은 미상이다. 1745년(영조 21) 10세손 삼징(三徵) 등에 의하여 중간본이 간행되었고, 1900년에 속집 2권을 합하여 2책으로 재간되었다. 권두에 김종직(金宗直)의 서문과 권말에 이광정(李光庭)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는 부 1편, 시 90수, 표전(表箋) 12편, 권2에는 소와 진언(陳言) 4편, 서(書) 1편, 서(序) 1편, 기 2편, 제축문(祭祝文) 4편, 책(策) 1편, 습유(拾遺) 2편, 가요 6편, 권3은 부록으로 연보·묘갈명·문견록·봉안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와 시는 조선 초기의 문풍(文風)을 여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표와 전 등의 글은 당시 관각문자(館閣文字)의 전칙(典則)으로 전형적인 왕실 문장의 모범이 되었다. 「하표(賀表)」 등은 아순(雅順)하고 청신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쓴 글이다.
「성균관벽불소(成均館闢佛疏)」는 조선초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이론적 타당성을 제공한 글로서, 유학의 입장에서 본 불교배척의 논리를 보다 명백히 하였다. 책문에서도 학문적 이론 정립에 도움이 큰 논술을 전개하여 유교적 원리가 국가사회에 밑거름이 되는 구실을 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