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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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적
  • 일제강점기
  • 시도문화유산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고려후기 충신 정몽주 등 5인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익수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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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고려후기 충신 정몽주 등 5인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내용

197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24년에 건립된 충주지씨(忠州池氏)들의 서원이자 사우(祠宇)이다. 일제강점기 때 충주지씨들이 호국선현의 애국 · 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려 말 충신 정몽주(鄭夢周), 고려 말 공신 지용기(池湧奇), 조선조 공신 정충신(鄭忠信), 병자호란 때 활약한 지여해(池汝海) · 지계최(池繼凗) 등 5인을 향사하여 왔는데, 1924년 지응현(池應鉉)이 이들을 배향하고 영정을 봉안하는 서원을 지었다.

병천사는 1927년 건축공사를 시작하여 1932년에 완공되었는데. ‘천리(天理)를 병집(秉執)한다’는 뜻에서 ‘병천사(秉天祠)’라 하며 서원의 역할을 겸하였다. 건립 초기의 입지형태는 문중 소유의 「병천사산도(秉天祠山圖)」에 잘 나타나 있다. 앞뒤의 죽림(竹林)과 연못을 배경으로 신문(神門) 1동과 병천사 현전(賢殿) 1동, 영당(影堂) 1동, 존심당(存心堂) 1동, 동재(東齋) 1동, 서재(西齋) 1동, 거경재(居敬齋) 1동이 자리잡고 있다.

사우는 건좌손향축(乾坐巽向軸, 동남향)을 중심으로, 위쪽에 선현을 봉사하는 제향공간과 아래쪽에 교육하는 강학공간을 두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기본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제향공간은 병천사 현전을 중심으로 앞에 신문이 자리잡고, 신문 앞에는 사적비(事蹟碑)와 묘력비(廟歷碑)가 있다.

현전 오른쪽에는 영당과 문이 현전과 나란히 위치한다. 강학공간은 동재인 숭인재(崇仁齋)와 서재인 집의재(集義齋)가 좌우에 자리잡고, 병천사와 마주보며 강당인 존심당이 위치하며, 존심당 오른편에는 사우의 대문격인 광제문(光霽門)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후에 퇴칸을 두고 있으며, 5량가구를 얹고 풍판(風板)을 단 맞배집이다.

참고문헌

  • - 『문화재도록(文化財圖錄)』(광주광역시, 1997)

  • - 『전국문화유적총람(全國文化遺蹟總覽)』(문화재연구소, 1996)

  • - 『금호2택지개발사업지구 문화유적지표조사』(광주시립민속박물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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