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본산 시대에 유점사(楡岾寺)의 말사인 신계사(神溪寺)의 부속암자였다. 899년(효공왕 3)에 포함(抱含)이 창건하여 낙가암(洛迦庵)이라 하였다.
1800년(정조 24)에 민혜(玟惠)가 중건하였고, 1848년(헌종 14)에 취봉(鷲峰)이 중건한 뒤 낙가암을 보광암으로 개명하였으며, 1871년(고종 8)에는 명허(明虛)와 의성(義惺) 등이 중건하였다.
당우로는 인법당(人法堂)을 비롯하여 화엄각(華嚴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별당인 화엄각은 승려들의 수도처로 이용되었다. 한말의 고승 대응(大應)은 이곳에 오래 머물렀는데,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3,000명의 신도들이 모여들곤 하였다.
절 주위에는 주봉인 관음봉(觀音峰)을 필두로 세존봉(世尊峰)·채하봉(彩霞峰)·집선봉(集仙峰) 등이 구부러진 활 모양으로 절을 감싸고 있다. 관음봉 아래에는 노승이 바랑을 메고 들어오는 모습을 한 노장바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