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본은 1732년(영조 8) 후손 영(泳)과 이재(李栽)에 의해 편집된 것을 1829년(순조 29) 방손 이교(履喬) 등이 간행하였다. 이교의 서문과 권구(權榘)·이광정(李光庭) 등의 발문이 있다. 중간본(重刊本)은 1901년 후손 학규(學圭)·원규(元圭)에 의해 목판으로 간행되었는데, 조덕린(趙德隣)의 서문과 유도헌(柳道獻)의 발문이 추가되어 있으며,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3권 1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수는 세계도(世系圖), 권1은 연보, 시 2수, 소(疏) 1편, 권2는 부록으로 영모록(永慕錄), 권3은 유사(遺事)·행장·묘갈명·봉안문·축문·제문·통문·상량문·중수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계행은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하였고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요직을 거쳤으며, 연산군 때에는 대사간으로 척신(戚臣)들의 잘못을 논박했으나 시정되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그 뒤 무오사화·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이력에서 보이듯 강직하고 곧은 선비였으므로 후세의 선비들이 추앙하고 흠모하여 사당을 짓고, 시호를 요구하여 모두 성취되었다. 다만 문집을 만들려 하였으나 유문(遺文)이 산실되어 전해지지 않아 추모의 정으로 실기(實紀)를 편찬하였다.
권구는 발문에서 “나라에 도가 없으면 죽음에 이르도록 변하지 않는다(國無道至死不變).”라는 말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