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계본지범요기』는 보살계를 해설한 강요 형식의 주석서이다. 보살계본이란 『범망경』에서 십중사십팔경계를 설한 부분을 묶은 것과 『유가사지론』에서 설한 대승계의 율의(律儀)를 묶은 것을 가리키며, 전자를 범망계본(梵網戒本)이라 하고 후자를 유가계본(瑜伽戒本)이라고 한다. 원효는 전자를 경전이라는 점에서 다라계본(多羅戒本)이라 하고, 후자를 논서라는 점에서 달마계본(達摩戒本)이라 하여 독자적인 명칭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다라계본과 달마계본의 차이성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양자를 서로 회통하려는 원효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서문과 본문으로 나뉜다. 서문은 보살계가 무엇이며, 왜 이 책을 짓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서문에 의하면, 보살계는 생사의 탁류를 거슬러 올라가서 본원(本源)으로 되돌아 가는 큰 나루의 구실을 하는 것이며,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것을 이룩하는 요긴한 문(門)이라고 정의하였다. 원효는 이러한 보살계는 다양한 이유로 실생활에서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짓는다고 하였다. 즉 어떤 한 가지 행위에 대해 죄가 되느냐 복이 되느냐 하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그 까닭은 속마음의 삿됨과 순정(淳淨)함을 알기가 어렵고, 복된 일이라고 한 것이 오히려 환란을 초래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겉으로만 깨끗하고 속은 더러운 도인과 계를 어기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문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이 책을 지었음을 밝혔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어떠한 죄가 가볍고 어떠한 죄가 무거운가를 가리는 경중문(輕重門)이고, 둘째는 무엇이 위범과 관련된 문제를 얕게 이해하는 것이고 깊게 이해하는 것인가를 가리는 천심문(淺深門)이며, 셋째는 궁극적인 요점을 밝힌 명구경지범문(明究竟持犯門)이다.
첫째, 경중문의 첫머리에서는 경계(輕戒)와 중계(重戒)를 설한 경론을 두루 살펴서 조목의 숫자를 비교하였다. 먼저 경계의 경우 달마계본은 44조목, 다라계본은 48조목, 소승 율장인 별해탈계경은 256조목임을 밝혔다. 다음에 달마계본의 십중계를 중심으로 성문계를 설한 별해탈계경, 재가보살계를 설한 『우바새계경』과 조목 및 내용의 차이를 제시하였다.
다음에 달마계본에 의해 지키는 것과 범하는 것[持犯]의 체성[性]과 모양[相]을 분별하였다. 원효는 달마계본에서 세 가지 연[三緣]에 의해 위범할 경우는 위범으로 판정하지 않고, 네 가지 인[四因]에 의해 위범할 경우는 모두 위범으로 판정한다는 지범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세 가지 연이란 ① 사람의 마음이 심한 광란 상태에 있을 때, ② 아주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③ 아직 수계(受戒) 하지 않았을 때이다. 네 가지 인이란 ① 무지(無知)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죄를 범한 경우, ② 방일(放逸)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죄를 범한 경우, ③ 번뇌가 심한 상태에서 죄를 범한 경우, ④ 경만(輕慢)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한 경우를 말한다. 위범의 네 가지 인 중 앞의 두 가지는 죄를 범한 사람의 마음 자체가 더렵혀지지 않은 경우이지만, 뒤의 두 가지는 마음이 더렵혀진 경우라고 하였다.
특히, 원효는 이 부분에서 달마계본의 십중계 가운데 첫 번째 계인 자찬훼타(自讚毁他)를 여러 가지 각도로 조명하여 어떠한 경우가 계율을 범한 것이고 범하지 않은 것인가, 그 사람의 마음이 더럽혀진 것인가 더럽혀지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서 자세한 논술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 자찬훼타에 대한 해설은 원효가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가장 비중을 두고 서술한 핵심적인 부분이다.
원효는 어떤 사람의 신심(信心)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자찬훼타하는 경우라면 오히려 복이 된다고 보았고, 성격이 방일하여 나쁜 생각 없이 자찬훼타한 것이라면 잘못을 저지른 것〔경죄〕임에는 틀림없지만 마음까지 악에 물든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특별히 미워하거나 좋아하여 자찬훼타하였을 경우는 아주 중대한 허물〔중죄〕은 아니지만 마음이 더럽혀진 것이라고 보았고, 자신의 이익과 공경을 받기 위하여 자찬훼타를 하게 되면 그것은 중대한 잘못을 짓는 것〔중죄〕이 된다고 하였다.
전(纏)과 사상[事]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익과 공경을 받기 위해서 자찬훼타를 행한 것에 대해서 그 상태에 따라 다시 셋으로 나누었다. 전(纏)이 현행하되 지극히 사납지는 않아서 참(慚) · 괴(愧)를 일으키면 연품(耎品)이고, 비록 지극히 사나워서 참도 없고 괴도 없을지라도 이것을 공덕이 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중품(中品)이며, 도무지 참 · 괴가 없고 깊이 애락하는 마음을 내며 이것을 공덕이 되는 것이라고 여기면 상품(上品)이라 하였다. 사상[事]에 의거할 때, 개별적인 사람을 비방하면 연품이고, 한 무리를 비방하면 중품이며, 두루 많은 무리를 비방하면 상품이라고 하였다.
다음에 상품의 전과 상품의 사상에 의해 중죄를 범한 사람은 비록 불도를 닦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은 마사(魔事)를 짓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들은 사자의 몸에 살면서 사자를 잡아먹는 벌레[獅子身內之蟲]와 같은 존재라고 비판하였다.
둘째, 천심문에서는 자찬훼타계를 얕게 이해하는 것과 깊게 이해하는 것의 양상을 밝혔다. 전자는 근기가 하열한 사람이 계를 듣고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찬훼타하는 어떤 경우에도 죄라고 여기는 것이고 후자는 근기가 뛰어난 사람이 그 의미를 파악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죄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후자의 경우 구체적으로 네 구절에 의해 판정하는 것이라고 하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 중생들이 지욕을 당하는 것을 깊이 불쌍히 생각하여 남이 받는 욕됨을 자기가 대신 받고,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영예를 남에게 주려고 하여 자훼찬타(自毁讚他)하였다면 바로 복이 된다. 그러나 자기가 영예를 얻고자 하여 자찬훼타하였다면 죄가 된다.
②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찬훼타하는 이를 미워하고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알기에, 또는 타인을 찬탄하면 반드시 그 사람이 나를 찬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훼찬타한 것이라면 중죄가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주장은 이치에 어긋나서 버려야 하고 자신의 이해는 도리에 맞는 것이어서 닦아야 하는 것임을 알아서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자찬훼타한 것이라면 큰 복[大福]이 된다.
③ 본성이 거짓되고 흉측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을 속여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깎아 내리고 자신의 단점을 덮으려는 의도로 자신의 소소한 장점을 허물이라고 비방하고 남의 단점을 공덕이라고 칭찬하며, 자신의 큰 단점을 공덕이라고 찬탄하고 남의 장점을 허물이라고 억압한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성품이 질박하고 정직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려는 의도로 정직하게 자신의 악을 보면 꾸짖고 남의 선을 들으면 칭찬하며, 자신의 덕을 알면 칭찬하고 남의 죄를 알면 나무란다면 복을 짓는 것이다.
④ 본성이 대범하고 훌륭하며 고매하고 소박하여 꾸밈이 없는 사람이 재앙과 복, 자신과 남을 둘로 여기지 않는 경지에 노닐기 때문에, 자찬훼타나 자훼찬타도 하지 않는다면 순수하고 질박함에 의해 행한 것으로 복을 짓는 것이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 성품이 둔하고 질박하여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찬훼타나 자훼찬타를 하지 않는다면, 혼돈에 의해 죄를 짓는 것이다.
이상 네 구절을 밝히고 있는 수행자에게 계율을 지키는 것과 범하는 것의 요체는 단지 자신의 행위의 득실을 정밀하게 관찰하는 것에 있으니, 다른 사람이 하는 행위에 대해 덕과 환난을 쉽게 판별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원효는 계율을 단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실천행을 단지 외부로 드러난 행위만으로 판정하는 것에 대해 곳곳에서 비판하였는데, 이 글을 통해 동시대인에게 불도에 비추어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진실한 지율(持律)인가를 명백히 밝혀 참된 수행의 길을 열고자 하는 원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셋째, 명구경지범문에서는 지키고 범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계상(戒相)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원효는 ‘계상을 여실히 깨닫는다’는 말의 뜻을 죄인 것과 죄가 아닌 것에 대해 양극단에 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만약 양극단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궁극적인 관점에서 지범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계바라밀(戒波羅蜜)도 완성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음에 궁극적인 의미에서 지범의 의미를 밝혀서, 계는 얻을 만한 상(相)이 없고 계를 범한 죄, 그리고 계를 지키고 범하는 사람도 얻을 만한 상이 없다고 하였으며, 계에 대해 전혀 없는 것이라거나,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모두 계를 어기는 것임을 밝혔다. 그러므로 계와 죄와 사람을 모두 잊고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계바라밀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보살계본지범요기』에 대한 주석서로는 3부가 현존하고 2부는 일실되어 모두 5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 진원(眞圓)이 지은 『지범요기조람집』은 9~19세기까지 일본 불교 각 종파 25명의 학자가 쓴 30부의 문헌에 인용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보살계본지범요기』가 일본에 미친 영향이 지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원효는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보살계본을 대상으로 계율을 지키는 것과 범하는 것[持犯]을 판정하는 실질적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는데 본서에서는 “보살계본”이 유가계본과 범망계본 중 어느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힌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본문에서 범망계본은 다라계본(多羅戒本)이라고 하고 유가계본은 달마계본(達磨戒本)이라고 하여 독자적 명칭을 설정하고 두 가지 계본을 모두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본서의 이러한 성격은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원효가 중시한 보살계본은 어떤 것인가?'라는 논쟁이 일어난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유가계본 중심설, 범망계본 중심설, 비(非)중심적 조화설, 중심설 · 비중심적 조화설의 불성립설 등이 제기되었지만 아직 명확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