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벌교에서 보성으로 가는 국도변 우천리 대동마을 초입에 있다. 탑은 하층 기단을 생략한 단층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석탑으로 9세기 이후 전국적으로 유행한 단층기단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천리사지는 오랜 경작과 2번 국도 개설시 다수의 석재 등이 유실되어 탑을 제외하면 사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또한 원래 사찰에 대한 문헌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절 이름을 추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구전에 의하면, 벌교읍 징광리에 있었던 징광사(澄光寺)의 말사였다고 한다. 1900년대 초 발간된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이 석탑을 ‘13척 높이의 오층석탑’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층수에 오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70년과 1985년 수리가 있었고 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에서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석탑의 지대석은 4매의 장대석을 엇물림하여 마련하였는데, 상면에 2단의 괴임을 두어 기단면석을 받치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엇물림 결구하였다. 면석은 각 면 중앙에 1주의 탱주를 두었고 모서리에도 우주를 두었다. 갑석은 4매로 되어 있는데 갑석의 기울기는 완만한 편이며 아래쪽에 1단의 갑석부연을 두었고, 상면에는 낮게 2단의 괴임을 두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3층으로 몸돌(또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1돌로 총 6매로 구성되었다. 탑신부는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을 뿐, 면석에 문비나 기타 부조상은 없다. 초층 탑신은 2층과 3층에 비해 높게 설정하여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다. 옥개석은 3층 모두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으며 모서리 전각의 반전은 경쾌한 편이다. 옥개석의 모서리에는 각각 1개씩의 풍경공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복발과 보개형 부재 1매가 남아 있다. 복발은 편구형으로 중앙에 연꽃과 띠매듭이 선명하다.
신라의 단층기단 석탑은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 경주 남산에서 시작되어 경북 지역으로 크게 확산된 양식이다. 이 석탑은 기단면석을 4매로 결구하는 수법과 지대석의 결구방식이 경주 남산과 경북 지역 석탑과 동일하다. 또한 탑신부의 구성과 옥개석의 표현수법은 9세기 중기에 유행한 단층기단 석탑 양식에 부합하여 제작 시기를 파악하는 데에 단서가 되고 있다.
이 석탑은 결구법이 정연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신라 단층기단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 확인되는 유일의 신라 단층기단 석탑이라는 점은 이 석탑의 존재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는 중앙의 새로운 석탑 기술이 남해안을 따라 서점(西漸)한 것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