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연곡사 북쪽 산 중턱에 위치한 고려초기의 승탑이다. 화강암을 이용해 만든 전형적인 팔각당 승탑으로 상륜부의 일부가 파손 복원되었으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세부표현이 정교하다. 양식으로 보아 같은 경내에 있는 동 승탑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북 승탑은 탑에 대한 기록이나 구전이 남아 있지 않아 누구의 탑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경내에 고려 초에 건립된 979년작 현각선사 탑비(보물, 1963년 지정)가 남아 있어 그의 탑일 가능성이 높다. 2001년 3월 도굴꾼에 의하여 파괴된 후 복원되었다. 이때 전면(全面)에 부착되어있던 이끼를 제거하였고 결실된 부재의 보충과 뒤바뀐 상륜부재를 바로잡았다. 동 승탑과 양식적 유사성이 있으나 세부표현에 있어 뒤떨어져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탑은 팔각원당형으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졌으며 상륜의 일부가 결실되었다가 수리 때 추가되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2단의 하대석으로 이루어졌다. 사각의 지대석을 놓고 그 위로 운룡문과 팔각의 하대석을 두었다. 하대석은 16엽의 연화문을 복련으로 새기고 여덟 연꽃의 모서리에만 귀꽃무늬를 두었다. 하대석 위에 2단의 받침을 두고 중대를 받쳤는데, 중대석 하단에도 2단의 각형받침을 두어 총 4단의 받침으로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 모두 안상을 새기고 내부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8구의 신장을 새겼는데, 팔부신중(八部神衆)으로 보인다. 상대석은 3단의 받침대 위에 놓았다. 상대석은 상하 2중의 연꽃을 총 16엽으로 연꽃 잎에는 다시 꽃무늬로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상대석 위로는 비교적 높은 탑신 괴임을 두었다. 탑신괴임은 모서리마다 중간에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내부에 가릉빈가 1구씩을 새겨 넣었다. 괴임의 상단으로는 낮게 3단의 괴임을 두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문비, 사천왕상, 향로를 새겼다. 옥개석 하단 위로는 앙곡을 주어 둥글게하고 내부에는 비천을 새겨놓았다. 지붕의 처마는 겹처마로, 상단은 기와골이 정교하게 표현되었는데, 막새기와 및 사래기와 등을 모각하여 사실성을 더하였다. 상륜부는 꽃 모양의 앙화 위로 보륜, 그리고 사방으로 날개를 활짝 핀 봉황이 조각된 보개 및 보주로 이루어 졌는데 봉황의 머리는 모두 결실되었다. 이 가운데 보륜 1매는 2001년 보수 당시 새로 만들어 추가했다.
이 승탑은 같은 경내에 위치한 동 승탑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면서도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유사한 점은 기본형과 각 부분에 새겨진 부조상들의 주제가 같다. 반면 하대석의 표현이나 옥개석 하단의 앙곡에 비천상을 새겨 넣은 점은 이 탑의 특징이다. 그러나 부조상의 조각수법과 하층 하대석에 나타나는 구름문양이 생동감을 잃은 점 등은 동 승탑을 모방하여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보인다.
승탑은 개창조(開創祖)의 탑을 가장 크고 화려하게 만든 후 이를 모방하여 만드는 경향이 있다. 연곡사에 남아 있는 동 승탑과 북 승탑은 이 같은 승탑의 건립환경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다. 또한 연곡사의 승탑은 주변지역과의 양식공유가 보여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친 호남지역 승탑의 양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