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탑의 전면에 탑주(塔主)의 것으로 보이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1963년 지정)가 남아 있으나 비신이 남아 있지 않고 이수의 제액에 명문이 없어 탑주를 추정할 수 없다. 전해오는 말로는 도선국사(827∼898)의 탑이라고 하나 이를 입증할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이 탑은 북 승탑과 함께 2001년 표면의 보존처리가 실시되었고 이때 순서가 뒤바뀐 상륜부재를 현재와 같이 바로잡았다.
탑은 팔각원당형으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졌으며 각부의 결실이 없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2단의 하대석으로 이루어졌다. 사각의 지대석을 놓고 그 위로 운룡문과 팔각의 하대석을 두었는데, 하대석 측면에는 8면 모두 사좌를 1구씩 새겼다. 하대석 윗면으로는 3단의 각형괴임을 두어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 모두 안상을 새기고 내부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8구의 신장을 새겼는데, 팔부신중(八部神衆)으로 보고 있다. 상대석은 3단의 받침대 위에 놓았다. 상대석은 상하 2중의 연꽃을 총 16엽으로 하고 연꽃잎에는 다시 꽃무늬로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상대석 위로는 비교적 높은 탑신 괴임을 두었다. 탑신괴임은 모서리마다 중간에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내부에 가릉빈가 1구씩을 새겨 넣었다. 괴임의 상단으로는 낮게 3단의 괴임을 두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정면에 문비와 옆으로 사천왕상, 나머지 면은 향로를 새겼다. 옥개석 하단은 위로 앙곡을 주어 둥글게하고 처마 밑은 겹처마로, 상단은 기와골이 정교하게 표현되었는데, 막새기와 및 사래기와 등을 모각하여 사실성을 더하였다. 상륜부는 꽃 모양의 앙화위로 보륜, 그리고 사방으로 날개를 활짝 핀 봉황이 조각된 보개 및 화염보주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팔각당형 승탑의 구조에 충실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석에 팔부신중을 새긴점, 탑신괴임에 동자주형태의 기둥을 세워 목조건축 양식을 나타낸 점, 탑신부에 향로를 새긴 점 등은 이 탑만의 특징이다. 또한 상륜부 보개에 4마리의 봉황을 배치하여 극락정토의 상징을 나타낸 것은 다른 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승탑은 탑주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있으나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844년),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868년)으로 완성된 통일신라 팔각원당형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수작이다. 또한 사천왕, 향로, 목조건축의 요소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었고 기단과 탑신의 비례도 적당하여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사, 건축사, 공예사 및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