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은 Sebastes inermis CUVIER이다. 몸은 방추형이고 옆으로 납작[側扁]하다. 눈은 툭 불거지고 매우 크다.
몸빛은 서식하는 장소와 수심에 따라 심한 차이를 나타내나 회갈색을 지닌 것이 가장 많고 회적색이나 흑회색을 지닌 것도 있다. 비늘은 약간 작은 빗비늘이며, 몸길이는 20∼30㎝이다. 난해성의 태생어로서 우리 나라 남부 연해에 많이 분포한다.
조선시대 중기 이전의 문헌에는 볼락으로 인정될 만한 어류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 말기의 어보류(魚譜類)에 비로소 볼락이 등장하고 있다.
김려(金鑢)가 진해에서 저술한 ≪우해이어보 牛海異魚譜≫에는 보라어(甫0x959c魚)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보라어는 모양이 호서에서 나는 참조기[黃石首魚]와 유사하나 극히 작고 빛깔은 옅은 자주빛이라고 하였다.
본토박이는 이를 보락(甫鮥)이라 부르고 혹은 볼락어(乶犖魚)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 방언으로 옅은 자주빛을 보라(甫羅)라 하고, 또 보라는 아름다운 비단을 말하는데, 보라라는 이름은 이에서 비롯됨이 틀림없다고 하여 그 이름에 대한 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진해의 어부는 때때로 그물로 잡으나 많이 잡지는 않으며 매년 거제도 사람이 볼락을 잡아 젓갈로 담근 것을 수백 단지나 배에 싣고 와서 팔고 생삼[生麻]과 바꾸어 간다고 하였다.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 玆山魚譜≫에는 박순어(薄脣魚)라는 것을 소개하였는데 그 속명을 발락어(發落魚)라 하고, “모양은 검어(黔魚:속명은 검처귀)와 유사하나 크기는 조기만하고 빛깔은 청흑색이고 입은 작고 입술과 아가미는 아주 엷으며 맛은 검어와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대해(大海)에서 유영(游泳)하고 밤에는 석굴(石窟)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발락어는 볼락이나 볼락류의 어류를 말하는 것이다.
1903년에 간행된 ≪한해통어지침 韓海通漁指針≫에 의하면 볼락은 우리 나라 연해에 널리 서식하는데 특히 동해의 북부에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연승(延繩)이나 일본조(一本釣)를 사용하여 이를 조획하였고 또 자망(刺網)과 수조망 같은 어망으로써 망획(網獲)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있어서는 일본조나 자망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 활어(活魚)는 일본 시장에서 인기가 있었고 값도 비쌌다.
근래에는 유자망(流刺網)이나 채낚기로 많이 잡고 있다. 어획량은 일제시대의 최고기록이 1939년의 1,969M/T이었고, 광복 이후에는 1970년대 후반기부터 어획량이 급증하여 1977년에 6,417M/T이 어획되어 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1987년에는 6,181M/T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