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대 헌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재상 및 많은 대신들이 조직한 화엄경결사(華嚴經結社)의 발원문이다. 이 글은 ‘상재국척대신등봉위헌강대왕결화엄경사원문(上宰國戚大臣等奉爲獻康大王結華嚴經社願文)’, 또는 ‘화엄경사회원문(華嚴經社會願文)’으로도 불린다. 이 화엄경결사는 헌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정강왕이 886년에 대신들과 함께 조직하였다.
대덕(大德) 현준(賢俊)은 왕에게 군신(群臣)이 사경(寫經)을 하도록 간해서 허락을 받고, 시서(侍書) 중에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선택, 『화엄경』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을 썼다. 김임보(金林甫)·순헌(順憲)·김일(金一) 등이 결사에 참여하여 『육십화엄경(六十華嚴經)』을, 그리고 국통(國統)과 승록(僧錄) 등이 『사십화엄경(四十華嚴經)』을 각각 사경하였다. 또한 북궁공주(北宮公主)인 진성여왕 김만(金曼)이 재물을 보시하기도 하였다.
중신과 종실의 친척들이 함께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경불사를 하였는데, 10일 안에 10질을 완성하였다. 1년에 두 차례 불국사 광학장(光學藏)에 모여 『화엄경』을 100번 전독(轉讀)하기로 하였다. 이 글은 9세기 후반의 화엄신앙 및 결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그러나 헌강왕이 죽은 해와 이 글이 쓰여진 연대 문제 등에 대해서는 혼란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