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의암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토굴(土窟)로서 신라 때에 진표(眞表)가 창건하였다. 진표는 이 절에 머물면서 점찰참법(占察懺法)을 행하였다. 부지런히 참회하면서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을 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몸을 절벽으로 던지니 2명의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손으로 받들어서 다시 절벽 위로 올려놓고, ‘법력(法力)이 모자라서 미륵과 지장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진표는 다시 21일 동안 부지런히 참회하여 지장보살로부터 계를 받고, 미륵보살로부터 간자(簡子) 두개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 이 절은 승려들의 참회기도처로서 이용되었다.
절벽 위에 있기 때문에 100척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고, 쇠줄로 집을 얽어 바위 위에 박아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였다고 하며, 이 같은 장치는 해룡(海龍)이 했다는 속전(俗傳)이 있다. 이규보(李奎報)가 갔을 때 이곳에는 진표의 상이 있었다고 하며 조선 중기 이후 폐허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