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의 주거지 1기와 그 주거지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 전기의 고분 19기의 유적이다. 1986년과 1988년 11∼12월동의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평면이 장방형이며, 길이 약 11m, 너비 3.85m, 깊이 0.1∼0.6m이다. 화덕자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중심부에서 2개의 주기둥구멍[主柱穴]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심발형무문토기, 각목무문토기, 지석 등이 발견되었다.
고분은 토광목곽묘 2기, 수혈식장방형석실분 16기, 옹관묘 1기 등이 있으며, 석실분이 주류를 이루었다.
토광목곽묘의 큰 묘는 길이 4.2m, 너비 1.8m, 깊이 0.8m이다. 목곽은 토광의 벽선을 따라 설치된 흔적만이 확인되었다.
수혈식석실분은 지면을 파고 토광을 만든 후, 그 안에 냇돌과 괴석으로 벽을 축조하였다. 개석은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바닥은 고운 흙을 한 벌 깔고, 잔돌을 띠엄띠엄 놓아 시상을 만든 것과 흙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있다. 규모는 제5호분의 경우 길이 3.75m, 너비 0.84m, 깊이 0.6m이다. 가장 작은 제4호분 외에는 모두 길이 3m 이상이다.
부장유물로는 토기와 철기가 출토되었다. 토기는 파수부완이 매 석실마다 들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철기 중 철정(鐵鋌)은 사체 자리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석실의 어깨선을 따라 토기를 일부러 깨서 깔은 것이 발견되어 제사의식(祭祀儀式)의 흔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옹관묘는 제15호분의 장벽 어깨선에 나란히 매장된 배장묘(陪葬墓)로 판단된다. 장란형의 연질토기옹과 단경연질호로 구성된 합구식(合口式)이다.
반여동 유적에서 조사된 주거지는 부산지역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유적이다. 석실분은 낙동강유역의 고분 중 중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