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생겨난 수많은 정치 · 사회단체가 생겨났다. 1948년 5월 10일 시행된 제헌국회의원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정수 200명에 대해 48개의 정당 · 사회단체에서 948명의 입후보자를 내었다.
그 중 10인 이내의 후보자를 낸 정당 · 단체는 43개, 단 한 사람만의 후보자를 낸 정당 · 단체는 26개에 달했다. 무소속이 전체 입후보자의 44%에 달하는 417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였다.
부산일오구락부는 1명의 후보자를 내었다. 선거 결과는 무소속이 85명,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5명, 민주국민당이 29명 당선되었으며,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 · 사회단체 중 한 사람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정당 · 단체가 31개에 이르렀다.
부산일오구락부는 경상남도 하동에서 1명의 당선자[강달수(姜達秀)]를 내었다. 후보자수와 당선자수의 비율상황을 보면, 입후보 1명에 당선 1명으로 당선자비율 100%를 보여주고 있으나, 1인1당의 유명무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제2대국회의원총선거에 입후보자를 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연해체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