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비밀문서를 취급한다든가 통신업무를 담당하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상사를 보좌하는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컬었으나, 윗사람을 수행하는 등의 단순 보좌역할을 하는 사람도 그 범위에 든다.
서양에서 비서는 지방부호의 서기로 일하면서 이웃 문맹자들의 편지도 대신 써주는 지방지식층에서 유래하였다. 15세기의 영국에서는 비서(secretary)가 왕의 문서를 처리하는 사람의 뜻을 가졌으나, 그 뒤 정부나 고위공직자에게 소속된 개인보좌원도 비서라고 하게 되었다. 특히 왕의 일을 맡아보는 비서는 국가비서(secretary of states)라고 하였는데, 미국에서 국무장관을 국가비서와 같은 말로 쓰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유래한다.
서구에서 비서는 산업혁명 이후 그 역할범위와 중요성이 커졌으며 오늘날에는 단순한 사무가 아니라 조직의 업무 방침에 따른 사후관리, 중요기밀문서 취급 등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시대의 비서감(秘書監), 고려 때의 승선(承宣), 조선 때의 승지(承旨) 같은 직책이 비서에 해당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비서라는 직업의 등장은 개화 이후, 특히 광복 이후라 하겠다.
이를 시기별로 살펴보면 ① 미국식 막료제도(staff) 및 비서직 도입기(1945∼1960), ② 군사혁명정부의 막료제도 도입 및 사기업조직의 비서·막료제도 도입기(1961∼1970), ③ 고도경제성장과 전문직 비서의 도입기(1970∼1980), ④ 비서직의 도약기(1981∼현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광복 직후 미군정에 의해 도입된 군대식 막료제도는 우리 나라의 깊은 권위주의적 사고에 의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군사혁명정부는 막료제도의 효율성과 능률성을 인정하여 정부 내에 차관보·기획관리실·담당관·보좌관 등 전문성을 띤 기관을 설치하였다.
이런 기관들은 큰 기능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사기업조직이 비서와 막료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즉 비서직이 발전하기 위한 기반이 어느 정도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 1970년대에는 고도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내의 외국인투자기관 증대 및 국내기업의 국제화 추세에 따라 전문적인 비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어 1980년대에는 전문적인 지식, 외국어실력, 사무기술(타자·속기·워드프로세스·컴퓨터)을 갖춘 전문적인 비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비서직이 윗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종속된 고용인이자 일상적인 잡무를 처리하는 보조인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 그 전문성을 아직 이해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비서직은 위로는 대통령비서관, 아래로는 개인비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이 또한 특색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이화여자대학교와 가야대학교에 비서학과가 있으며, 나사렛대학교, 동양대학교에는 비서행정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국내 최초의 비서학과는 1968년 창설된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의 비서학과로, 매년 ≪비서학연구≫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