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릉의 남사면(南斜面)에 있는 판석조 돌방무덤[板石造石室墳]이다.
응평리는 초촌면 내의 추양리 · 연화리 · 초평리 · 소사리 · 송국리 등의 지역과 더불어 낮은 구릉과 평야로 이루어진 평원지대인데, 이러한 지형은 멀리 대전의 문화동 · 괴정동에서부터 금강을 따라 세종시의 일부지역과 논산시의 많은 낮은 구릉지역을 지나서 부여의 남부지방에까지 연결되고, 여기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지방에까지 연장된다.
응평리고분은 바로 이와같은 평야지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가까이에는 금강의 지류 중 하나인 석성천(石城川)이 흐르고 있다.
1975년 11월에 우연히 발견되어 조사된 처녀분(處女墳)으로 조사 당시 묘실내에서 관정(棺釘)을 발견한 것 외에는 유물이 1점도 없었는데, 이는 판석조꺾임천장식[板石造平斜天障式]이 유행하던 당시의 백제는 불교의 영향으로 부장(副葬)하지 않는 풍습이 성행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장의 형태는 벽석(壁石) 윗면에 1단의 장대석(長臺石)을 안쪽으로 기울어지게[內斜] 올려 놓고, 다시 그 위에 판석(板石)을 올려 놓아 단면(斷面)이 육각형이 되게 한 이른바 평사천장식이며, 묘실 바깥의 생토층(生土層)에는 너비 25㎝, 길이 10㎝의 샘를 파고 그 안에 자갈을 채워 넣음으로써 배수시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