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현북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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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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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나촌(羅村)·희어터·인강재 등 모두 세 지역으로 나뉘어 군집되고 있다.

내용

나촌의 고분들은 해발 160m의 당산(堂山) 기슭 남사면에 위치하는 석실분으로 모두 10여 기이다.

고분군에서 100∼200m 거리에는 염창천(鹽倉川)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옆으로 비교적 넓은 강변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나촌고분은 판석조(板石造)석실분으로 서쪽으로 약 30° 가량 기울어져 서남향을 하고 있다.

희어터에 있는 3기의 고분도 당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그 기슭에 위치해 나촌과 같은 형국을 띠고 있다. 자리가 전형적인 사신사상(四神思想)을 나타내고 있다. 꺾임천장식[平斜天障式]의 판석조 돌방무덤이다.

인강재에 있는 수십 기의 고분군은 해발 180m의 국사봉(國師峰) 서쪽 기슭 중턱에 남면해 있다. 250여 미터 거리에는 작은 하천이 서남쪽으로 흘러 금강(錦江)에 합류하며, 그 앞은 좁은 들이 전개되어 있다.

인강재의 고분은 전부 할석조의 소규모 구덩식 돌방무덤이다. 낮지만 원형의 봉토분이며, 평면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내부 주체시설은 완전 지하식이며 널길[羨道]은 없다. 벽은 올라가면서 점차 안으로 기울어져 있다. 천장은 납작천장[平天障]이며 개석(蓋石)은 여러 장의 판상석(板狀石)을 사용하였다. 단장(單葬)임이 분명하다.

현북리고분군은 모두 돌방무덤으로서 대부분 바닥에는 할석을 깔았으며, 벽과 천장은 판석을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옮겨놓은 국립부여박물관 안의 고분은 꺾임천장식의 판석조석실분이다. 묘실(墓室)은 전체 길이가 2.35m이다. 널방[玄室]은 길이 1.94m, 너비 75㎝, 벽 높이 69㎝, 천장 높이 98㎝이고, 널길은 길이 40㎝, 너비 75㎝, 높이 66㎝이다.

현북리 2호분도 판석조의 꺾임천장식 돌방무덤이다. 널방은 길이 2.17m, 너비 1.25m, 벽 높이 85㎝, 천장 높이 1.12m이다.

한편, 나촌고분군의 서쪽에는 부여나성(扶餘羅城)이 있으며, 희어터고분군의 동북쪽에는 석성산성(石城山城)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고분과 산성간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백제고분연구』(강인구, 일지사, 1977)
집필자
강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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