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현북리 고분군

  • 역사
  • 유적
  • 삼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인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고학)
  • 최종수정 2025년 07월 0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나촌(羅村) · 희어터 · 인강재 등 모두 세 지역으로 나뉘어 군집되고 있다.

내용

나촌의 고분들은 해발 160m의 당산(堂山) 기슭 남사면에 위치하는 돌방무덤으로 모두 10여 기이다.

고분군에서 100∼200m 거리에는 염창천(鹽倉川)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옆으로 비교적 넓은 강변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나촌 고분은 판석조(板石造) 돌방무덤으로 서쪽으로 약 30° 가량 기울어져 서남향을 하고 있다.

희어터에 있는 3기의 고분도 당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그 기슭에 위치해 나촌과 같은 형국을 띠고 있다. 자리가 전형적인 사신사상(四神思想)을 나타내고 있다. 꺾임천장식[平斜天障式]의 판석조 돌방무덤이다.

인강재에 있는 수십 기의 고분군은 해발 180m의 국사봉(國師峰) 서쪽 기슭 중턱에 남면해 있다. 250여 미터 거리에는 작은 하천이 서남쪽으로 흘러 금강(錦江)에 합류하며, 그 앞은 좁은 들이 전개되어 있다.

인강재의 고분은 전부 할석조의 소규모 구덩식 돌방무덤(구덩식 고분)이다. 낮지만 원형의 봉토분이며, 평면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내부 주체시설은 완전 지하식이며 널길[羨道]은 없다. 벽은 올라가면서 점차 안으로 기울어져 있다. 천장은 납작천장[平天障]이며 개석(蓋石)은 여러 장의 판상석(板狀石)을 사용하였다. 단장(單葬)임이 분명하다.

현북리 고분군은 모두 돌방무덤으로서 대부분 바닥에는 할석을 깔았으며, 벽과 천장은 판석을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옮겨놓은 국립부여박물관 안의 고분은 꺾임천장식의 판석조 돌방무덤이다. 묘실(墓室)은 전체 길이가 2.35m이다. 널방[玄室]은 길이 1.94m, 너비 75㎝, 벽 높이 69㎝, 천장 높이 98㎝이고, 널길은 길이 40㎝, 너비 75㎝, 높이 66㎝이다.

현북리 2호분도 판석조의 꺾임천장식 돌방무덤이다. 널방은 길이 2.17m, 너비 1.25m, 벽 높이 85㎝, 천장 높이 1.12m이다.

한편, 나촌 고분군의 서쪽에는 부여나성(扶餘羅城)이 있으며, 희어터 고분군의 동북쪽에는 부여 석성산성(石城山城)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고분과 산성 간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 - 『백제고분연구』(강인구, 일지사,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