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홍산(飛鴻山) 동남록(東南麓) 중턱에 괴석조석실분(塊石造石室墳) 수십기가 있으며, 같은 마을내에 있는 노적봉(露積峰) 남사면 중턱에도 역시 수십기의 괴석조 석실분이 있다.
또 물탕골에도 비홍산 북맥(北脈)의 중턱 남사면에 할석조(割石造)·괴석조 석실분이 3, 4기 위치하고 있다. 고분군 가까이에는 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며, 전방에는 금천(金川)이 흐르고 있어 전체적인 환경이 다른 지역의 백제고분들과 마찬가지로 묘지를 선정할 때 사신사상(四神思想)을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홍량리고분군의 북쪽에는 백제의 산성인 비홍산성이 위치하고 있어 양자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인접한 조현리와 무정리에는 지봉산(芝峰山)과 둥그산의 남사면에 판석조(板石造) 석실분이 조영되어 있다.
지형상으로 비홍산처럼 높이 200m가 넘는 큰 산 가까이 깊은 곳에는 할석조·괴석조석실분이 많으며, 평야지대에서 가까운 야산이나 구릉에는 판석조 석실분이 많은데, 이 점은 두 양식의 축조시기의 선후뿐 아니라 피장자의 사회적 신분 또는 부력(富力)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축조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6세기에서 7세기에 걸친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