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홍연리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목차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보라실 안산의 해발 264m의 옥녀봉(玉女峰) 동쪽 기슭에 이어져 있는 산 중턱에 모두 5기가 모여 있다. 가까운 곳에 약 1.3㎞의 갈산천(葛山川)이 흐르고 여기에 접해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가신리(加神里) 검신(檢神)마을 고분이나 상금리(上錦里) 고량굴고분군과 같이 북현무·동청룡·서백호·전방의 하천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입지조건상 사신사상(四神思想)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모두 판석조(板石造)의 돌방무덤인 이 고분들의 규모를 제1호분과 제2호분을 통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호분은 서쪽으로 약 42° 기울어져 서남향을 하고 있다. 널방[玄室]은 너비 1.17m, 벽 높이 78㎝, 천장 높이 1.12m이다. 각 벽은 1매의 판석을 세워 만들었다. 동벽과 서벽에는 벽 위에 1매씩의 장대석(長臺石)을 내사(內斜)시켜 올려놓은 뒤 2매의 판석을 덮어 천장은 꺾임천장[平斜天障]을 이루고 있다. 널방 중앙에는 관대(棺臺)가 설치되어 있었다. 널길[羨道]은 없었다.

제2호분은 동쪽으로 약 10° 가량 기울어져 남향을 하고 있다. 묘실(墓室)의 전체 길이는 3.54m이다. 널방은 길이 2.16m, 너비 1.43m, 벽 높이 92㎝, 천장 높이 1.39m이다. 널길은 길이 1.38m, 너비 1.03m, 높이 76㎝이며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 천장은 판석조 벽 위에 2매의 장대석을 내사시켜 올려놓은 뒤, 판석으로 덮은 꺾임천장이다.

의의와 평가

판석조의 꺾임천장식 돌방무덤은 부여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고분형식이다. 이를 통해볼 때, 홍연리고분군은 백제가 부여를 수도로 한 시기인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백제고분연구』(강인구, 일지사, 1977)
집필자
강인구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