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여왕이 즉위한 지 몇 년 만에 부호부인과 각간(角干) 위홍(魏弘) 등 3, 4명의 총신이 실권을 잡고 국사를 마음대로 하여 정치가 극도로 문란해졌다.
이 때 누가 시정을 비방하는 글을 다라니(陀羅尼)의 은어(隱語)로 지어 길에 뿌렸다. 그 내용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성여왕이 2명의 소판(蘇判)과 3, 4명의 총신, 그리고 부호부인에게 정권을 맡겨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부호부인은 아마 진성여왕의 유모였다는 점을 이용하여 당시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