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영

  • 역사
  • 제도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희궁의 경호를 목적으로 설치한 어영청(御營廳)의 분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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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희궁의 경호를 목적으로 설치한 어영청(御營廳)의 분영.

내용

경희궁의 북문인 무덕문(武德門) 밖 지금의 사직동에 있었다. 청사 건물은 68칸이다. 경희궁 경호의 주력부대로서 왕이 여기에서 거주할 때는 어영청의 임시 본영이 되었다.

이때는 천총(千摠)·기사장(騎士將)·파총(把摠)·초관(哨官)·별무사(別武士) 각 1인이 기사 25인, 별파진(別破陣)·취고수(吹鼓手)·대기수(大旗手) 각 6인, 지방군 61인을 거느리고 대기 근무하였다. 북이영은 1624년(인조 2) 총융청이 처음 설치될 때 본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669년(현종 10) 총융청이 삼청동으로 이사하면서 다시 어영청에 예속되었다.

참고문헌

  • - 『만기요람(萬機要覽)』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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