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북한산에 있었던 의승군(義僧軍)의 병영.
개설
내용
승군대장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겸하고 있었는데, 초대 승군대장에는 성능이 임명되었다. 치영의 승군들은 낮에는 무술을 익히고 아침 · 저녁으로는 불경을 공부하면서 나라의 유사시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산성 안에 많은 절을 창건하여 승군의 병영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당시 병영으로 이용되었던 사찰로는 도총섭이 장무(掌務)하였던 136칸의 중흥사(重興寺)를 비롯하여 태고사(太古寺) · 서암사(西巖寺) · 용암사(龍巖寺) · 보국사(輔國寺) · 보광사(普光寺) · 부왕사(扶旺寺) · 원각사(元覺寺) · 국녕사(國寧寺) · 노적사(露積寺) · 경흥사(慶興寺) 등 11개 사찰과 원효암(元曉庵) · 봉성암(奉聖庵) 등 2개 암자가 있었다.
이 중 중흥사만은 중창한 것이고 나머지 사찰은 승군의 주둔을 위하여 축성할 때 새로 창건한 것이다.
변천과 현황
1756년(영조 32)에는 방번제로 인한 지방 각 사원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이 제도를 개혁, 방번전(防番錢) 징수제도로 바꾸었다. 북한치영은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북한산지(北漢山誌)』
- 『경성부사(京城府史)』
- 『비변사등록』
- 「조선후기산성의 승군총섭」(여은경, 『대구사학』 32, 1987)
- 『조선전기불교사상연구』(우정상,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5)
- 「정조대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의 반감」(김갑주, 『소헌남도영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84)
- 「숙종조북한축성고」(김용국, 『향토서울』 8, 1960)
-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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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북한산성을 수비하는 승려의 급료를 충당하기 위하여 각 도(道)의 승려로부터 징수하던 번전. 숙종 37년(1711)에 북한산성을 지을 때에, 각 도의 승려에게 그 수비를 담당하게 하였는데, 영조 37년(1761)에 산성의 승려로 바꾸고, 그 급료를 지방 승려에게 부담시켰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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