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3월문수성(文秀星)에서 처음 공연한 뒤 여러 극단에서 레퍼터리로 채택되어 공연되었다. 문수성 공연은 조일재(趙一齋)의 번안으로 「신혼여행궐수지장(新婚旅行蕨狩之場)」을 서막으로 「낭자임종(良子臨終)」까지 10막으로 구성되었다.
연기진으로는 무남역에 윤백남(尹白南), 낭자에 추정(秋汀), 강중장에 조일재, 안언석에 정숙(鄭橚), 이호산에 이범구(李範龜) 등 다수 여형배우(女形俳優)가 출연했다.
당시 『매일신보』의 공연기록에 의하면, 특히 윤백남과 정숙의 연기력이 각광을 받았고, 조일재는 목소리가 작아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본래 「불여귀」는 일본의 유명한 레퍼터리로서, 1901년 오사카[大阪]의 아사히좌[朝日座]에서 초연되었는데, 이 당시부터 가부키[歌舞伎]를 구파, 신연극을 신파라 부르게 되었다. 도쿠후지[德富盧花]의 대표소설을 야나가와[柳川春葉]가 각색한 것이다.
육군중장 가다오카[片岡]의 딸인 나리코[良子]는 계모슬하에서 자라나 해군중위 다케오[武男]에게 시집을 갔으나, 남편은 청일전쟁과 항해생활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고 혼자 고독하게 지낸다.
더욱이 나리코는 폐결핵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남편과 절연을 결심하고 요양하게 되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요양지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나 이미 때는 늦어 그녀는 죽어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신극 중 가정문제를 다룬 멜로 드라마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신파극의 하나였다.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불여귀」 공연은 일본작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번역이라기보다 번안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