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이찬(伊飡)이었다. 522년(법흥왕 9) 3월 가야의 왕이 신라에 청혼하여 왕명에 의하여 그는 누이를 대가야 이뇌왕(異腦王)에게 시집보냈다. 이로써 두 나라는 혼인동맹으로 친선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고령현조(高靈縣條)에 인용한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는 “이찬(夷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이라고 하여 누이가 딸로 기재되어 있다.
비조부(比助夫)와 비지배(比枝輩)는 신라말의 동음이기(同音異記)로 보겠다. 이 신라 왕족의 딸이 낳은 자식이 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월광태자(月光太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