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월 『개벽(開闢)』 7호에 발표되었다. 「희생화(犧牲花)」 이후 두 번째 작품이지만 실질적인 문단 등단작이다.
어느 비오는 봄밤, 책을 뒤적거리는 남편 옆에서 아내가 전당잡힐 물건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그날 낮에 한성은행에 다니는 얌전한 소시민 T가 방문하여 자기 아내에게 사다줄 새 양산을 자랑하는 대목과 K, 즉 ‘나’가 작가되기를 결심하여 방랑을 끝내고 정착하기까지 자신의 반생을 회고하는 대목이 교차된다. 다음날 아침 장인의 생신 잔치에 동부인하여 참석하는 대목에서는, 여러 친척 앞에서 K(나)가 느끼는 자부심과 모멸감, 초라한 차림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 심리적 갈등이 상세히 묘사된다.
이틀 뒤 기미(期米: 양곡거래소에서 정기 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쌀)로 한몫 잡은 인천 처형이 ‘나’의 집을 방문하는데, 부잣집 딸로 태어나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빈궁을 감내하면서도 때로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과 아내를 포용하는 ‘나’의 감상으로 끝나는 마지막 대목에서, 범속한 삶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시선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 지식인 K와 그를 둘러싼 속물적 사회 사이의 갈등을, 이해와 순종 속에서도 잠시 속물적 유혹에 끌리는 아내를 축으로 하여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일인칭자전적 소설로 인정세태를 섬세하게 관찰하여 당대 젊은 지식인의 꿈과 고민을 생생하게 그려낸 가작이다.
특히, “그것이 어째 없을까?” 하고 중얼거리는 K의 아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갑작스러운 서두가 당시의 소설적 전통으로 볼 때 매우 혁신적이다. 작자 개인에게는 이 작품이 실질적으로 문명을 떨치게 한 첫 작품으로서 의의를 가지지만,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정립 과정상에 가지는 의의 또한 매우 크다.
김동인(金東仁)의 「배따라기」(1921.5)와 염상섭(廉想涉)의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8∼10)가 「빈처」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이 작품이야말로 1920년대 단편소설의 본격적인 출발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그 뒤에 나타난 다른 작가 및 자신의 후기 작품과 비교해볼 때, 기교의 미숙성뿐 아니라 지식인의 소극적이고 감상적인 현실 인식으로 심정 토로에 그쳐버렸다는 점 등에서, 초기작으로서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