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규모에 따라 태사(太社)·왕사(王社)·국사(國社)·후사(候社)·이사(里社) 등이 설치되었다.
조선 초기에 음사(淫祠)를 배격하고 유교적 교화에 힘쓰기 위하여 응교(應敎) 김첨(金瞻)이 고제(古制)에 따라 이사지법(里社之法)을 세우자고 하였고, 충청도관찰사 허지(許遲)도 40호 또는 50호마다 1사를 세워 제사하는 이사법을 시행할 것을 청하였으나 조선 전시대를 통하여 크게 시행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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