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중 크게 활약하였으며 뒤에 전선(戰船)으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전투함으로 일명 판옥전선이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의 군선(軍船)은 문헌상으로 대맹선(大猛船)·중맹선·소맹선 등 세 종류로 나타나고 있으며, 각 진포에 배치되어 있던 척수는 대맹선 81척, 중맹선 195척, 소맹선 461척, 무군 소맹선(無軍小猛船) 245척 등 982척이었다.
그러나 이 맹선들은 원래 세조 때 군용과 조운(漕運:조세를 운반하는 일)에 겸용할 수 있도록 규격을 통일한 일종의 병조선(兵漕船)이어서 몸집이 우둔하고 기동력도 부족해서 일찍부터 군용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논란이 자자하였다. 중종과 명종대의 삼포왜란(三浦倭亂)·사량왜변(蛇梁倭變)·을묘왜변 때에도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여 새로운 전투함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기운이 팽배하였다.
이런 가운데 1555년(명종 10) 아주 획기적이고 새로운 군함이 시험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판옥선이다. 중량 140.3톤, 너비 8.74미터, 높이 5.56미터, 길이 32.16미터의 규모를 갖추었다. 종래의 맹선은 선체 안에 병사들이 발을 붙이고 싸울 수 있도록 적당한 높이에 갑판을 깔고, 배를 움직이기 위하여 여러 개의 노를 달아놓는 평선(平船)인 데 반하여, 판옥선은 여느 선체 위 전면에 걸쳐 상장(上粧)을 꾸려 2층으로 꾸민 옥선(屋船)이다. 그 구조는 하반부를 이루는 배의 하체와 그 위에 세운 상장부분으로 대별된다.
하체 부분은 10여 줄의 기다란 각재(角材)를 가지고 평탄하게 꾸민 두껍고 튼튼한 저판(底板, 또는 本板)을 밑에 놓고(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本板不見이라 적혀 있음), 7줄의 외판(外板, 또는 杉板)을 양현(兩舷:양쪽 뱃전)에 세운다. 15줄의 참나무를 세로로 꾸며서 평면으로 만든 선수재를 선체의 전면에 세우고(그림에 飛荷眞板十五立이라고 되어 있음), 선체의 후면에도 선미재(船尾材: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를 세워서 이들을 서로 고착시킨 다음, 그 위에 14개의 가목(駕木, 또는 梁)을 가로 걸치고, 그 바로 밑으로 내려가며 양현의 외판재마다 가룡목(加龍木)이라 부르는 부재로 연결하였다.
판옥전선에서 선체 위에 상장을 꾸민 모양은 가목 끝단에 연이어 앞뒤로 길게 현란(舷欄)을 놓고, 거기에 방패판을 사면에 둘러세워 그 상면에 현란과 평행하게 패란(牌欄)을 설치한 뒤, 패란을 기대로 하여 갑판을 깐다. 그리고 그 주변에 여장(女墻)이라 부르는 난간을 세우고 갑판 중앙에 따로 지휘소인 2층 누각을 설치하고 있다.
상장의 너비가 하체의 너비보다는 약간 넓어서 노는 그 사이를 통하여 밑으로 뻗어내려 있다. 판옥선은 가목 위에 깔아 놓은 배 안의 갑판과 상장 위에 깔아 놓은 상장 갑판의 두 개의 갑판을 가진 2층구조로 된 전투함이다. 그러므로 노역을 하는 격군(格軍)들은 아래 위 두 갑판 사이의 안전한 장소에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은 채 안심하고 노를 젓고, 군사들은 상장갑판 위 넓고 높은 장소에 자리잡고 싸우기에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판옥선은 개발된 지 37년만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적을 여지없이 무찌르는 맹활약을 하였다. 당시 우리 수군의 전투함은 몇 척의 거북선을 제외하면 오직 판옥선뿐이었고, 나머지는 정원이 불과 몇 명뿐인 전투함의 부속선으로 시중을 든다든가 정탐을 하는 등 극히 작은 사후선(伺候船)이나 협선(挾船) 등이었다. 그러나 판옥선의 수는 임진왜란 전 기간을 통하여 매우 적었다.
왜란이 발발한 직후 전라 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처음으로 출동한 옥포해전(玉浦海戰)에 동원된 것이 겨우 28척(그 중 4척은 경상우도의 것)이었고, 2차 출동인 당포해전(唐浦海戰) 때에 전라좌도 23척, 전라우도 25척, 경상우도 3척을 합한 51척, 부산해전 때에 전라 좌우도의 판옥선을 합하여 74척이었다. 1593년(선조 26) 8월 삼도의 판옥선이 겨우 100여 척에 이르고 각기 작은 배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가장 척수가 많이 확보된 때도 180여 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여러 해전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뒤에도 바다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판옥선이 매우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판옥선의 장점은 견후장대하다는 것인데, 임진왜란 때에 이미 125명 이상의 군사를 수용한 그 크기는 종전에 기껏 80명을 정원으로 한 대맹선이나 일본 군선에 비할 바가 아니며, 그 구조도 튼튼하였다.
상장을 높게 2층으로 꾸며 놓은 판옥선의 장대한 선형은 노역을 전담하는 격군과 전투에 임하는 군사를 갈라 놓아 서로 소임을 다하는 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적이 선상에 기어올라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포를 높게 설치하여 유리한 자리에서 적에게 포격을 가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중에 개발된 거북선의 모형(母型)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도 주력함으로 남아 있었다. 거북선이 판옥선의 상장갑판 윗부분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둥그런 개판(蓋板)을 덮어 전사까지도 보호한 특수 군선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전선은 판옥선이 그대로 이름만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