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선

  • 과학
  • 역사
  • 정치·법제
  • 물품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접전시에 적이 배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뱃전에 짧은 창칼[槍劒]을 빈틈없이 꽂아놓은 배.
이칭
  • 이칭창검선(槍劒船)
물품
  • 관련 의례
  • 재질나무 | 금속
  • 제작 시기고려시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재근 (서울대학교, 조선공학)
  • 최종수정 2026년 04월 0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접전시에 적이 배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뱃전에 짧은 창칼[槍劒]을 빈틈없이 꽂아놓은 배.

내용

창검선(槍劒船)이라고도 하며, 고려 말 · 조선 초에 군선으로 사용되었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1377년(우왕 3) 손광유(孫光裕)가 왜구와 싸우다가 흘러가는 화살에 맞아 검선을 타고 겨우 빠져나왔다는 기록이 처음 보인다.

조선 초 세종 때에는 검선 1척과 비거도선(鼻居刀船) 2, 3척을 짝지어 왜구를 격퇴하였으며, 압록강을 건너 침략하는 도둑떼를 방비하기 위하여 요해처에 검선 2, 3척씩을 배치해놓았으며, 일본인이 자주 드나드는 포구마다 창검선을 비롯하여 중대선(中大船) · 맹선(孟船) · 추왜선(追倭船) 등에도 창검을 꽂아놓고 무위(武威)를 시위하기도 하였다.

검선은 칼을 빼들고 배 안으로 뛰어드는 왜구의 전술방식에 대응해 창안된 배로서, 고려시대의 과선(戈船), 조선시대의 거북선과 그 맥을 같이한다. 다만, 과선과 거북선은 대형 군선인 데 비해, 검선은 15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배였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거북선의 신화(神話)』(김재근, 정우사,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