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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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새로운 조선법에 따라 만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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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 새로운 조선법에 따라 만든 배.
내용

1430년(세종 12) 무렵 중국·유구(琉球)·일본 등 여러 나라의 배는 모두 쇠못을 써서 시일을 두고 건조시켜 견고하고 경쾌하며, 오래도록 물에 떠 있어도 물이 새지 않고, 큰 바람을 만나도 손상됨이 없이 오래도록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군선은 그렇지 못하였다.

중국식 조선법을 본떠 배를 시조(試造)해 본 결과, 그것이 좋다는 것이 판명되어 1434년부터 한때 쇠못을 쓰고 외판(外板)을 이중으로 하는 중국식 조선법을 채택하기로 하였는데, 그것을 갑선(甲船)·갑조선 또는 복조선(複造船)이라 하고, 재래의 전통적인 우리 나라 조선법에 따라 만든 배를 단조선(單造船)이라 했다.

조선 초기 태종 때에 이미 군선이 속력이 느릴 뿐만 아니라 구조도 견실하지 못하다는 것이 거론되어 그 해결책으로 쾌선(快船)을 써보려 하였고, 귀화왜인(歸化倭人)으로 하여금 일본식 배를 만들게 하여 시험해 보기도 하였다. 한편 귀선(龜船) 같은 특수군선의 활용방안도 모색하였다.

세종 때에는 거도선(居刀船)을 활용하게 하는 한편, <병선수호법 兵船守護法>을 만드는 등 군선의 구조개선이 여러 방면으로 모색되다가, 드디어 1434년에 중국식 갑조선을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채택에 앞서 조선(造船)을 관장하는 경강사수색(京江司水色)에서는 갑조선 건조법에 따른 시험선을 건조하였다.

1431년에 만든 동자갑선(冬字甲船), 1434년에 만든 왕자갑선(往字甲船)과 월자갑선(月字甲船)이 그것인데, 이 배들은 모두 하체는 철정(鐵釘)과 목정(木釘)을 반반씩 쓰고, 상장(上粧)은 모두 철정을 써서 만들었다. 이 배를 만드는 데 든 철정은 동자갑선이 1,800근, 왕자갑선이 1,900근, 월자갑선이 3,352근이었다.

1434년 가을에는 이 세 척의 시험선을 시험한 결과 왕자갑선이 가장 빠르고, 동자갑선이 그 다음이었으며, 유구의 선장(船匠)이 만든 월자갑선이 가장 느리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전선들을 왕자갑선이나 동자갑선 형태로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모처럼 채택된 갑조선 건조법도 문종 때에는 그것이 우리 나라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거론되어,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단조선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배는 평저선구조(平底船構造)로 일관하여 첨저형선박(尖底型船舶)은 발달하지 못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문종실록』
『조선왕조군선연구』(김재근,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6)
집필자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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