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 나주 출신.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한동안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막하로 참전하여 여러 해전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遊軍將)을 맡아 적의 대선(大船) 2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전상을 입고 한산도해전에서도 재차 부상을 당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의 명량해전과 1598년의 노량해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와 같은 전공으로 1594년 강진현감으로 임명되고 연달아 금구(金溝)·능성(綾城)·고성(固城)의 현감을 역임하고, 전후에는 창선(鎗船)을 고안하여 만들었다.
1610년(광해군 2)에는 남해현령에 제수되어 해추선(海鰌船)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여 건조하고, 1611년에는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喬桐水使)에 제수되었으나 전상이 도져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에 죽었다.
그는 전공이 혁혁하고 파란이 많은 수군장이며, 우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조선기술자(造船技術者)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