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용

  • 과학
  • 인물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해전, 명량해전 등과 관련된 무신.
이칭
  • 시망(時望)
  • 체암(遞菴)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옥포해전|사천해전|임진왜란|한산도해전|명량해전|노량해전
  • 본관금성(錦城)
  • 사망 연도1612년(광해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현감
  • 출생 연도1556년(명종 11)
  • 출생지나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재근 (서울대학교, 조선공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나주 나대용 생가 및 묘소 중 생가 정측면 미디어 정보

나주 나대용 생가 및 묘소 중 생가 정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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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해전, 명량해전 등과 관련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 나주 출신.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한동안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막하로 참전하여 여러 해전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遊軍將)을 맡아 적의 대선(大船) 2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전상을 입고 한산도해전에서도 재차 부상을 당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의 명량해전과 1598년의 노량해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와 같은 전공으로 1594년 강진현감으로 임명되고 연달아 금구(金溝)·능성(綾城)·고성(固城)의 현감을 역임하고, 전후에는 창선(鎗船)을 고안하여 만들었다.

1610년(광해군 2)에는 남해현령에 제수되어 해추선(海鰌船)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여 건조하고, 1611년에는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喬桐水使)에 제수되었으나 전상이 도져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에 죽었다.

그는 전공이 혁혁하고 파란이 많은 수군장이며, 우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조선기술자(造船技術者)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

  • - 『나주목지(羅州牧誌)』

  • -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 - 『체암나대용장군실기(遞菴羅大用將軍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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