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선가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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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개념
조선시대에 군선을 신조 또는 보수하기 위하여 비축하여 둔 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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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군선을 신조 또는 보수하기 위하여 비축하여 둔 미곡.
내용

조선 후기 대동법이 실시된 뒤 각종 군선과 조운선 등 관선(官船)을 건조 또는 수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대동미(大同米)로 충당되었다.

선혜청(宣惠廳)의 호남청사례(湖南廳事例)에 의하면, 전선(戰船)은 만든 지 3년 뒤에 목정(木釘)을 전면적으로 가는 개삭(改槊)을 하고, 5년이 지난 뒤에 다시 신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각 읍에서 징수한 대동미 가운데 전선가미(戰船價米)로 매년 1백석을 저축하였다. 5년 사이에 모아진 5백석 중 150석은 개삭의 비용에, 3백석은 신조하는 비용에 충당하고, 나머지 50석은 전선에 필요한 각종 집물을 마련하기 위하여 쓰여졌다.

그리고 병선(兵船)의 경우에는 병선가미(兵船價米)로서 매년 9석을 저축하여 5년간에 모아진 45석을 가지고 30석은 신조, 15석은 개삭의 비용으로 충당되고, 병선의 집물은 퇴선(退船)이 된 전선의 것을 쓰거나 퇴선이 된 전선, 또는 병선을 판매하여 얻은 값으로 충당하였다.

또, 조선을 한 척 신조하는 비용은 쌀 48석과 면포(綿布) 5필이고 신조한 뒤 5년 만에 실시하는 개삭의 비용은 쌀 15석과 면포 15필이었다. 이밖에 선재(船材)는 규정된 나무의 그루 수[株數]만큼 관이 지정하여 소나무를 기르고 있는 봉산(封山)에서 베어다가 사용하였다.

군선가미는 반드시 일정한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는데, 전라우수영 막하의 각종 군선의 신조에 소요된 미곡의 석수는 다음과 같았다. 전선 267석 14두 8승, 귀선(龜船) 219석 4두 8승, 해골선(海鶻船) 80석 6두 5합, 방패선(防牌船) 54석, 병선 40석 2두 8승, 사후선(伺候船) 12석이다.

참고문헌

「이조조선사(李朝造船史)」(강만길, 『한국문화사대계』 Ⅲ,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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