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서 정확한 편저자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송시열(宋時烈)의 제자인 이선(李選: 1632~1692)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2권 2책의 필사본으로,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32자 내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례석의(四禮釋疑)』의 저작 연대와 편찬 의도 등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김장생(金長生) · 정구(鄭逑) · 이식(李植) · 이황(李滉) · 성혼(成渾) · 정경세(鄭經世) · 이이(李珥) · 유성룡(柳成龍) · 노수신(盧守愼) · 이언적(李彦迪) · 기대승(奇大升) 등 이 책에서 인용한 선현 11명의 구성으로 보아 영남 지역과 기호 지역의 학파에 치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김장생의 예설이 220조로 가장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는 정구와 이황의 예설이 각각 89조와 80조 인용된 것에 비해 월등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 책은 기호 지역 예학의 영향을 받은 예서로 파악되기도 한다.
『가례』의 내용 중에서 의구심이 드는 의례(疑禮)나 『가례』에 제시되지 않은 변례(變禮)에 관한 질문과 이에 대한 조선시대 선현들의 답변을 『가례』의 체제에 따라 배치하였다. 이때 동일한 질문에 한 사람의 답변만 싣기도 하고, 관련한 답변이 여러 개인 경우 여러 선현의 답변을 나란히 수록하기도 하였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관 · 혼 · 상 · 제의 사례(四禮) 등 『가례』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나, 「국휼졸곡전사제(國恤卒哭前私祭)」 · 「기공장전제사(朞功葬前祭祀)」 · 「임제유노복상급산역(臨祭有奴僕喪及産疫)」 · 「묘분묘훼(廟焚墓毁)」 등 『가례』에는 없는 변례들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16세기 이후 『가례』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여러 의례와 변례에 대한 조선시대 예학자들만의 예설들을 수록한 책으로, 이를 통해 관련한 의구심을 해소하고 난감한 상황에 대처할 근거를 확보할 목적으로 편찬된 행례서(行禮書)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조선의 예학이 자체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는 실례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