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산(功德山)이라고도 한다. 587년(진평왕 9) 사방에 여래상(如來像)을 새기고 붉은 비단으로 싼 사방이 열자나 되는 큰 돌이 하늘로부터 죽령(竹嶺) 동쪽 100리쯤에 있는 산꼭대기에 떨어졌다.
왕이 이를 듣고 가서 예배한 뒤 그 바위 한쪽에 대승사(大乘寺)를 개창하고 『법화경』을 독송하는 승려를 청하여 이 절을 맡겨 향화를 그치지 않게 하였는데, 이로 인해 산 이름을 사불산이라고 하였다. 뒤에 그 승려가 죽어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 연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 산은 3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주봉 서쪽에는 대승사, 동봉에는 천주사(天柱寺), 중봉에는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13세기 중엽까지 백련사에 의상(義湘)이 쓰던 종려로 만든 삿갓 및 육환장이 있었고, 옛 건물에는 원효(元曉)와 의상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기도 하였다. 의상은 이 산에 백련사를 창건하여 주석하고, 원효는 화장사(華藏寺)를 지어 살면서 조석으로 만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반야암(般若庵)·상적암(上寂庵)·대비암(大妃庵)·묘봉암(妙峯庵)·윤필암(潤筆庵)·문수암(文殊庵)·보현암(普賢庵)·사불암(四佛庵)·미륵암(彌勒庵) 등의 암자가 있었으며 신라 이래로 원효·의상·나옹(懶翁)·무학(無學)·함허(涵虛) 등의 고승이 머물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