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辭典)은 단어의 의미·품사·용법·어원·표기법 등을 해설한 책이고, 사전(事典)은 사상(事象)의 체계적 분석·기술에 의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이 엄밀하게 그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편, 한자(漢字)를 부수와 획수에 따라 배열, 해석한 책은 따로 옥편(玉篇) 또는 자전(字典)이라 한다.
사전은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배열의 기준에 따라 ① 문자(로마자·한자·한글 등)를 기준으로 하여 그로부터 발음이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한 것, ②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그로부터 문자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한 것, ③ 의미에 따라 분류하고 그로부터 문자나 발음을 알 수 있도록 한 것.
(2) 색인(索引) 및 설명어에 따라 ① 같은 언어로 된 것(국어사전 등), ② 서로 다른 언어로 된 것(대역사전, 곧 영한사전·한독사전 등).
(3) 수록어(收錄語)의 성격에 따라 ① 보통사전, ② 특정부분의 지식에 중점을 둔 특수사전(발음사전·액센트사전·어원사전·인용문사전·유의어사전·반의어사전·관용어사전·고어사전·방언사전 및 역사·법률·문학·언어학·음악·건축·미술·철학·동물학·식물학·수학·천문학·지명·인명 등 각 전문어를 수록, 해설한 사전).
영국의 사전은 라틴어 단어에 영어 번역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용어해(用語解, glossary)의 명칭으로 된 것은 8세기경의 것도 있으나, 현재 알려진 최초의 영라사전(英羅辭典)은 1440년경 편집된 ≪Promptorium Parvulorum≫으로 약 2,000단어를 수록하고 있다.
나영사전(羅英辭典)은 1460년경의 ≪Medulla Grammatice≫가 최초라 일러진다. 그 뒤 대역사전의 전통은 1600년경에 확립되었고, 이런 일들이 영어사전 출현의 지반을 이루었다.
최초의 영어사전은 코드리(Cawdrey, R. )의 ≪어려운 영어단어의 알파벳표 A Table Alphabetical of Hard Words≫로서 수록 어휘수는 약 3,000이었다. 코드리 이후 18세기까지 많은 사전이 간행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난해어(難解語, hard word)사전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고, 일상어는 독자가 당연히 아는 것으로 생각하여 생략하였다.
교양인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를 모아 이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베일리(Bailey,N.)의 ≪Dictionarium Britannicum≫(1730) 등에서부터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존슨(Johnson,S.)의 ≪A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755)는 베일리의 사전을 기저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당시까지의 사전편찬자들의 업적을 집대성한 것이며, 영어사전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사전은 당대를 전후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있었던 주관주의적 사전 편찬태도를 보이고 있다.
곧 사전의 편자는 자기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채록어(採錄語)의 취사를 결정하고, 또한 채록어에 대해서도 옳고 그르다는 가치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전편찬자는 주관적인 호오(好惡)의 판단을 버리고 모든 단어를 과학적·역사적으로 수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주의적인 주장을 명확한 형태로 발표한 사람은 트렌치(Trench, R. C.)이다. 그는 <영어사전의 결함에 대하여 On some Deficiencies in our English Dictionaries>(1857)라는 영국언어학협회 (Philological Society)의 발표에서 사전편찬자는 역사가(historian)이어야지 비평가(critic)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머리(Murray,J. A. H.)가 편찬한 ≪A New English Dictionary≫(1884∼1928)는 이러한 주장이 결실된 위대한 사전이다. 이 사전은 총 10권, 1만 5488쪽의 방대한 규모로서 수록 어휘는 41만 4825개 낱말이고, 인용한 용례는 182만 7306개로 되어 있다.
역사적 원칙을 철저히 따른 이 영어사전은 통칭 N.E.D. 로 약칭되며,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되었으므로 붙여진 별명 ≪옥스퍼드영어사전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의 약칭 O.E.D. 로도 불리다가, 1933년 증보판을 내면서 정식명칭을 ≪옥스포드영어사전≫으로 바꾸어 근년에는 흔히 O.E.D.로 약칭되고 있다.
한편, 독일에서는 19세기에 발달한 과학적 언어학의 성과와 함께 이를 실행에 옮긴 그림(Grimm, J.) 형제에 의하여 1852년부터 ≪독일어사전 Deutsches Worterbuch≫이 간행되게 되었다. 그림 형제는 15세기경부터의 문학어를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이에 어원적·역사적 설명을 하고 중요한 방언적 어휘를 추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프랑스의 경우는 리트레(Littre, E.)의 ≪프랑스어사전 Dictionaire de la Langue Fran○aise≫(1863∼1872)이 그림 형제의 ≪독일어사전≫과 같은 방침으로 만들어졌다. 최신의 사전으로 주목되는 것으로는 로베르(Robert, P.)의 ≪Dictionaire Alphabetique et Analogique de la langue Fran○aise≫(1951)가 있다.
문자로서의 한자는 형(形)·음(音)·의(義)의 세 가지 면에서 해설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① 한자 자체(字體)의 해설을 주로 한 자서(字書), ② 한자의 자음(字音) 해설을 주로 한 운서(韻書), ③ 고전어(古典語)를 주석하는 훈고(訓詁)의 자서, ④ 고실(故實)과 사물을 분류, 열거한 유서(類書), ⑤ 그 밖에 위 여러 자료를 하나의 책으로 묶은 종합적인 실용자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자를 주축으로 한 것으로 중점은 고어(古語)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현대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⑥ 구어(口語)에 중점이 놓여 한자보다 오히려 언어 자체를 해설하는 사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자체를 주로한 자서에는 ≪설문해자 說文解字≫가 있다. 이는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서기전 99년에 지은 것이다. 540부(部)로 나누어 편방(偏旁)에 따라 9,353자를 분류하였다.
자음을 주로 한 운서는 수(隋)의 육법언(陸法言) 등이 지은 ≪절운 切韻≫(601)에서 비롯되어 당(唐)의 손면(孫愐)이 지은 ≪당운 唐韻≫(전하지 않음.), 북송(北宋)의 척륜(戚倫) 등이 지은 ≪광운 廣韻≫(1008), 그리고 ≪광운≫의 약본인 ≪예부운략 禮部韻略≫(1037), 그 증보본인 ≪집운 集韻≫(1066) 등이 만들어졌다.
훈고의 자서는 전한(前漢)의 ≪이아 爾雅≫에서 비롯되어 ≪광아 廣雅≫·≪비아 埤雅≫ 등으로 이어졌으며, 청나라 완원(院元)의 ≪경적찬고 經籍纂詁≫에 이르러 많은 고전어와 그것의 훈해(訓解)를 집성한 편리한 사서가 되었다.
오늘날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유서는 ≪이아≫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그 뒤 당나라 두우(杜佑)의 ≪통전 通典≫, 송나라 이방(李昉)의 ≪태평어람 太平御覽≫(977) 등으로 이어졌다.
종합적인 실용자서의 최고본은 양(梁)나라 고야왕(顧野王)의 ≪옥편 玉篇≫(543)이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로는 송나라 진팽년(陳彭年) 등의 ≪대송광회옥편 大宋廣會玉篇≫이 최고본이다.
이 밖에 명나라 매응조(梅膺祚)의 ≪자휘 字彙≫ 등이 있었으며, 실용에 적합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나라의 장옥서(張玉書) 등이 왕명에 의하여 편집한 ≪강희자전 康熙字典≫(1710년 완성, 1716년 간행)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전12집, 매집(每集) 3권 119부를 설정, 부수(部首)·부중(部中) 다 같이 필획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문자보다는 언어 그 자체를 해설한 사서는 중화민국에 들어와 비로소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최초의 것은 육이규(陸爾奎) 등이 편집한 ≪사원 辭源≫(1915)이며, 이 밖에 육비규(陸費逵) 등의 ≪사해 辭海≫(1936), 주기봉(朱起鳳)의 ≪사통 辭通≫(1934), 왕이(汪怡) 등에 의한 ≪국어사전 國語辭典≫(1943) 등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사전은 종래 운서와 옥편에 국한되었고, 한글을 기초로 단어를 배열, 주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전은 주로 외국인의 손에 의하여 비롯된 현대적 사전들에서 그 전통을 찾게 된다. ≪조선어사전 朝鮮語辭典≫(1920)은 국어를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 이에 일어로 주석을 붙인 사전이다.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편찬에 착수, 박이양(朴彝陽)·현은(玄檃)·송영대(宋榮大)·김돈희(金敦熙) 등이 위원이 되어 편찬한 것으로, 비록 일어로 주석되었으나 최초의 본격적인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록어휘는 5만 8639어로 한자어 4만 734어, 고유어 1만 7178어, 이두 729어로 되어있다.
이 밖에 한국인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서로는 김동성(金東成)의 ≪최신선영사전 最新鮮英辭典≫(1928), 조선어연구회의 ≪선화신사전 鮮和新辭典≫(1930), 이종극(李鍾極)의 ≪모던외래어사전 Modern外來語辭典≫(1937) 등이 있다.
그 뒤 최초의 한한사전(韓韓辭典)으로 1938년 문세영(文世榮)의 ≪조선어사전 朝鮮語辭典≫이 간행되었고, 1947년 이윤재(李允宰)의 ≪표준조선말사전≫이 나왔다.
국어의 정리와 통일체로서의 역사적 의의가 큰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1950년 ‘큰사전’으로 개제)은 1947년 제1권이 간행되었고, 1957년에 전 6권이 완간되었다.
이 사전의 편찬작업은 1929년 10월 31일에 108명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朝鮮語辭典編纂會)를 조직함으로써 비롯되었는데, 권덕규(權悳奎) 외 32명의 사업추진준비위원과 신명균(申明均)·이극로(李克魯)·이중화(李重華)·최현배(崔鉉培) 등 5명의 집행위원을 두었다.
1936년 4월 이 사업이 조선어학회로 넘어가면서 이극로·이윤재·정인승(鄭寅承주무)·한징(韓澄)·이중화의 5명이 전임 집필위원이 되었으며(뒤에 권승욱(權承昱)·권덕규·정태진(丁泰鎭) 증원), 1942년 가을까지 어휘카드 대부분의 초벌 풀이가 끝나 일부 조판까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에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나 광복되었을 때는 이들 원고가 분실되고 말았다. 광복 후 다시 원고를 찾고 정리하여 1947년 10월 9일 그 첫째권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조선말큰사전≫(본문 564면)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에 이르렀고, 둘째권은 1949년 5월 5일에, 셋째권은 1950년 6월 1일에 각각 간행하였다.
6·25 등의 사정으로 6권 전부를 완간한 것은 1957년 6월 30일이었는데, 이때는 ≪큰사전≫(한글학회 지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사전의 편찬간행은 <한글맞춤법통일안>(1933)과 <사정한 조선어표준말모음>(1936)과 함께 우리 어문생활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 사전이 간행된 뒤에 많은 국어사전이 나왔다. 외국인에 의해서는 대역사전이 편찬되었는데, 서양인의 한국어사전은 대부분 기독교 선교사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푸칠로의 ≪노한사전≫은 이때까지 출판된 구주어(歐洲語)·한국어 대역서의 최초의 것이다.
리델(Ridel, F.C.) 등의 ≪한불자전≫은 비교적 체재가 구비된 것이나, 이것보다 스코트의 ≪영한사전≫을 거쳐 정비된 게일(Gale, J.S.)의 ≪한영자전≫이 당시 가장 훌륭한 사전이었다.
특히, ≪한불자전≫과 ≪한영자전≫은 주석이 외국어이나 그 체재로 보아 국어사전의 선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본인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일한사전(日韓辭典)에 치우쳤다. ≪일한회화사전≫은 표제어가 4,500여, ≪일한이로하사전≫은 7,100여, ≪선역국어대사전≫은 20여만에 이르는 대사전이었다.
국어의 보통 사서 외에 백과사서적(百科事書的) 성격을 띤 책들은 그 항목배열에 따라 의미상 분류하는 유해식(類解式)과 어휘 끝자의 운(韻)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운부식(韻府式)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유해식에 ≪지봉유설≫(李睟光, 1614)·≪유원총보 類苑叢寶≫(金堉, 1646)·≪고사신서 攷事新書≫(徐命膺, 1771)·≪성호사설유선 星湖僿說類選≫(安鼎福, 연도 미상)·≪재물보 才物譜≫(李成之, 정조조)·≪물보 物譜≫(李載威, 1802)·≪물명유고 物名類考≫(柳僖, 순조조)·≪송남잡지 松南雜識≫(趙在三, 순조조)·≪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李圭景, 헌종조)·≪만가총옥 萬家叢玉≫(편자·연도 미상)이 있고, 운부식에 ≪대동운부군옥≫(權文海, 1798)·≪옥휘운고 玉彙韻考≫(李景羽, 연도 미상)가 있다.
또한, 특수한 사항에 관한 사상(事象)을 채록, 설명한 특수사서(特殊辭書)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법제류에 ≪동국문헌비고≫(洪鳳漢, 1770)·≪증보문헌비고≫(李萬運, 1908)·≪반계수록≫ (柳馨遠, 1737), 지리류에 ≪동국여지승람≫(盧思愼 등, 1530), 처세류에 ≪증보산림경제≫(柳重臨, 1766), 전기류에 ≪해동명장전 海東名將傳≫(洪良浩, 1816)·≪고려명신전≫(南公轍, 1822)·≪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安鍾和, 1909), 의서류에 ≪동의보감≫(許浚, 1613)·≪제중신편 濟衆新編≫(康命吉, 1799), 서지류에 ≪조선도서해제≫(조선총독부, 1919)·≪조선서지 Bibliographie Coreene≫(Courant, M., 1890) 등이다.
운서는 ≪삼운통고 三韻通考≫가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고려말 충렬왕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106운 ≪예부운략 禮部韻略≫(1226)을 대본으로 한 것이다.
최근에는 특수사전도 여러 가지가 간행되었다. 유재원의 ≪우리말 역순사전≫(1985), 남영신의 ≪우리말 분류사전(전4권)≫(1987∼1992), 박용수의 ≪겨레말 갈래사전≫(1993), 남광우·이철수·유만근의 ≪한국어 표준발음사전≫(1984), 한국방송공사의 ≪표준한국어 발음대사전≫(1993), 박용수의 ≪겨레말용례사전≫(1996), 남광우의 ≪고어사전≫, 유창돈의 ≪이조어사전≫(1964), 홍윤표·송기중 등의 ≪17세기 국어사전≫(1995), 이기문의 ≪속담사전≫(1962), 김민수 편저의 ≪우리말 어원사전≫, 김재홍 편저의 ≪한국현대시 시어사전≫(1997), 김윤식·최동호 편저의 ≪한국현대소설 소설어사전≫(1998)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편의 ≪국어국문학사전≫(1974), 정병욱 편의 ≪시조문학사전≫(1966), 장삼식의 ≪대한한사전≫(1964),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한국 한자어사전(전4권)≫(1997), 한국문화 상징사전 편찬위원회의 ≪한국문화상징사전≫(1992), 이훈종의 ≪민족생활어사전≫(1993), 이홍직이 편한 ≪국사대사전≫(1963) 등이 있다.
한글학회에서 펴낸 ≪지명총람(전20권)≫(1966∼1986)은 대표적인 지명사전이라 할 것이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의 압축판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