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장총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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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 새로 개발된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화약 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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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세종 때 새로 개발된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화약 병기.
내용

『세종실록』 1448년(세종 30) 12월 초 6일에 처음 이름이 보이는 총통으로서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禮)』의 ‘병기도설(兵器圖說)’에도 그림과 설명이 있다.

‘병기도설’에서는 사전장총통을 약통(藥筒)·격목통(激木筒)·취(觜)·모병(冒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약통은 화약을 넣는 부분으로 길이 2촌6분(79.7㎜), 속길이 2촌2분6리(69.3㎜), 겉둘레 3촌8분4리(117.7㎜), 내경 7분4리(22.7㎜), 두께 2분3리(7.1㎜)이며, 약통 끝의 막힌 부분의 두께는 3분4리(10.4㎜), 약선을 끼우는 구멍의 직경은 6리(1.8㎜)이다.

폭발력을 키워주는 격목을 박는 격목통의 길이는 7분4리(22.7㎜)이며, 속길이도 같다. 겉둘레는 3촌4분3리(105.1㎜)이며, 총통 입구쪽의 내경은 7분7리(23. 6㎜), 약통쪽 내경은 7분4리(22.7㎜)로 약통쪽으로 갈수록 좁게 되어 있다.

취는 격목통의 앞에 있는 것으로 발사물인 화살[箭]이나 금속 등으로 만든 총알[銃丸]을 넣는 곳이다. 크기는 길이 8촌1분9리(251.0㎜)이며, 겉둘레 3촌4분3리(105.1㎜), 내경은 7분7리(23.6㎜)이다. 모병은 약통 뒷부분에 있으며, 손잡이용 나무를 끼우는 곳으로 길이는 2촌2분5리(69.0㎜), 약통쪽 겉둘레가 2촌9분6리(90.7㎜), 끝부분의 겉둘레가 3촌7분7리(115.6㎜)이다.

전체의 길이(취+격목통+약통+모병)는 1척3촌7분 8리(422.4㎜)이며, 무게는 2근10냥이다. 사전장총통은 길이 8촌3분(254.3㎜)의 세장전(細長箭) 4개나, 길이는 같고 좀 가는 차세장전(次細長箭) 6개, 혹은 길이 8촌(245.2㎜)의 차소전(次小箭) 1개를 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93년(성종 24) 이후부터 일자총통(日字銃筒)으로 기록되어 있다. 외형적인 특징은 약통과 총구(銃口) 사이에 아홉 개의 마디[帶]가 있으며, 약통으로부터 첫째와 둘째마디 사이가 격목통의 위치이다.

현재 경희대학교 박물관에 한 개의 사전장총통이 남아 있다. 총통의 모병부분에 “戊□鎭上 姜鍊官 四箭長銃筒(성□진상 강련관 사전장총통)”이라 기록되어 있다. 무(戊)자 다음이 확인되지 않아 제작된 확실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실록에 처음 보이는 1448년(세종 30)이 무진년(戊辰年)이므로 1448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참고문헌

『국조오례서례』
『화포식언해』
『한국초기화기연구』(채연석, 일지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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