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의 화약무기 대개량 때 제조된 것으로 장군화통·일총통 다음으로 크며, 손으로 들고 사용할 수 있는 총 중에서 가장 크다. 청동으로 제조된 이총통의 구조는 당시의 총포와 같이 앞부터 취(觜)·격목통(激木筒)·약통·모병(冒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사물은 소전(小箭) 1개나 세장전(細長箭) 6개, 혹은 차세장전(次細長箭) 9개를 총의 취에 넣고 동시에 발사하였다.
총의 모병에는 지름 3㎝, 길이 70∼80㎝짜리 나무자루를 박아 총을 쏠 때에는 이를 잡고 사용하였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의 ‘병기도설’에 의하면 총의 규격은 취의 길이가 8촌2푼3리(25.2㎝), 격목통의 길이가 8푼8리(2.7㎝), 약통의 길이가 3촌6리(9.4㎝), 모병의 길이가 2촌2푼3리(6.8㎝)로 총 전체의 길이가 나무자루를 제외하고 1척4촌4푼(44.1㎝)이다. 총의 입지름은 8푼4리(2.6㎝)이며, 무게는 3근8냥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이총통이라 양각(陽刻)된 총이 하나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총구의 형태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의 총통도(銃筒圖)에 총구가 삼각형으로 된 [그림]과 같은 총으로 보여 이 총의 제작연대는 세종 중엽부터 『국조오례서례』가 편찬된 1474년(성종 5) 이전으로 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총통은 길이가 43㎝로 병기도설 이총통의 길이 44㎝와 1㎝ 정도 차이가 나며, 총의 내부구조는 두 총이 서로 같다. 다만, 총구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병기도설에 기록된 형태와 크기의 이총통은 현존하지 않으며, 채연석(蔡連錫)이 1980년『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 이총통 설명을 가지고 복원, 제작하여 행주산성유물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