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대좌평을 역임한 관리.
개설
학계에서는 대좌평 지적을 사택지적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일본서기≫와 사택지적비문(砂宅智積碑文)을 종합해보면 사택지적은 642년(의자왕 2) 도왜(渡倭)하였다가, 백제로 돌아온 뒤, 654년 노재상(老宰相)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의 퇴관은 642년 의자왕이 왕권중심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내좌평(內佐平) 기미(岐味) 등 고명지인(高明之人) 40여명을 섬으로 추방한 정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강화된 왕권의 대귀족(對貴族) 통제력에 말미암은 것이다. 사택지적비는 그가 만년에 지난날의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만든 것이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
- 『일본서기(日本書紀)』
- 『백제인물고(百濟人名考)』(이홍직, 『서울대학교논문집』1, 1954)
- 「사비시대(泗沘時代) 백제지배체제(百濟支配體制)의 변천(變遷)」(노중국, 『한우근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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