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말기에 이남규(李南珪)가 지은 한문단편소설.
개설
내용
장자는 재산이 넉넉하여 이미 수십 명의 아름다운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양처자에게 특별히 정을 쏟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기 집 여종을 대하듯 하였다. 산양처자는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방아 찧고 하는 집안일에 정성을 다하면서 불평하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장자가 총애하던 애첩 하나가 몰래 사통하던 장남이라는 남자를 끌어들여 김장자의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하였다. 장남은 읍에서 일하던 교활한 관리로서, 김장자네 재산을 돌보아준다는 명목으로 들어와서는 그 집 논밭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장남의 집에서는 강아지조차 배가 불러 문지방에 걸터 누웠으나, 김장자네 자식들은 굶주려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산양처자는 이런 꼴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친정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김장자의 애첩은 산양처자가 말없이 일 잘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던 터라, 김장자의 명을 빌려 다시 돌아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산양처자는 애첩이 자기를 종처럼 부리려고 하는 수작인 줄 알고는 끝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산양처자전」에 등장하는 산양처자 · 김장자 · 장남 · 김장자의 애첩 등은 각각 한국 · 일본 · 친일파 · 매국노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 대처하는 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온순하기만 하던 산양처자가 마지막에 가서는 김장자네 집을 뛰쳐나오고, 그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이룩될 광복에 대한 신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활한 장남이나 김장자의 애첩 등은 친일매국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참고문헌
- 『수당집(修堂集)』(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1973)
- 『여한전기(麗韓傳奇)』(이가원, 우일출판사, 1981)
- 「산양처자전별고(山陽處子傳瞥考)」(이덕근, 『중앙문화』11, 중앙대학교,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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