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의 문집 『수당집(修堂集)』 권3에 있는 「윤자삼에게 답함[答尹子三]」이라는 편짓글에 인용의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일제에 의하여 나라가 망해가던 당시의 상황을 한 집안에 비유해 풍자한 소설이다.
산양처자는 양가의 규수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내칙」 · 「열녀전」 같은 수신서(修身書)를 두루 읽어 몸가짐을 바르게 하였다. 길쌈 · 바느질 같은 여공(女工)에도 두루 익숙하나,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늦도록 시집을 못 갔다. 산양처자는 22세가 되어서야 같은 군에 사는 김장자의 첩이 되었다.
장자는 재산이 넉넉하여 이미 수십 명의 아름다운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양처자에게 특별히 정을 쏟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기 집 여종을 대하듯 하였다. 산양처자는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방아 찧고 하는 집안일에 정성을 다하면서 불평하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장자가 총애하던 애첩 하나가 몰래 사통하던 장남이라는 남자를 끌어들여 김장자의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하였다. 장남은 읍에서 일하던 교활한 관리로서, 김장자네 재산을 돌보아준다는 명목으로 들어와서는 그 집 논밭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장남의 집에서는 강아지조차 배가 불러 문지방에 걸터 누웠으나, 김장자네 자식들은 굶주려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산양처자는 이런 꼴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친정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김장자의 애첩은 산양처자가 말없이 일 잘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던 터라, 김장자의 명을 빌려 다시 돌아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산양처자는 애첩이 자기를 종처럼 부리려고 하는 수작인 줄 알고는 끝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산양처자전」에 등장하는 산양처자 · 김장자 · 장남 · 김장자의 애첩 등은 각각 한국 · 일본 · 친일파 · 매국노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 대처하는 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양처자전」의 주인공인 산양처자가 양가의 규수로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인물인데도 김장자의 첩이 된다고 하는 내용은 일제의 침탈에 고통받던 당시 한국의 상황과도 대비된다.
온순하기만 하던 산양처자가 마지막에 가서는 김장자네 집을 뛰쳐나오고, 그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이룩될 광복에 대한 신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활한 장남이나 김장자의 애첩 등은 친일매국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