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어(亡魚)·䰶魚 또는 마어(麻魚)라고도 하였다. 학명은 Scomberomorus niphonius CUVIER.이다. 몸이 홀쭉하고 상당히 길며 측편(側扁)하다. 비늘은 아주 잘고, 몸빛은 등쪽은 회청색이고 배쪽은 은백색이다.
몸 상부에 짙은 청록색의 얼룩무늬가 빽빽이 나 있다. 제1등지느러미가 길고 가슴지느러미는 짧다. 제2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뒤에는 몇 개의 토막지느러미가 있다. 몸길이는 100㎝ 내외이다.
삼치는 우리 나라 여러 곳에 분포하며 4∼5월경에 내만에 내유(來游)하여 산란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기도와 충청도에 망어(亡魚)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기도에 망어(䰶魚), 평안·황해·충청·강원·함경도에 마어(麻魚)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조 때에 편찬된 읍지들에 의하면 경상도를 제외한 전도에서 마어가 생산된 것으로 되어 있고, 조선시대 말기에 편찬된 읍지들에 의하면 임해도(臨海道) 중에서 경상남도와 평안남도를 제외한 모든 도에서 생산된 것으로 되어 있다.
김려(金鑢)가 진해에서 저술한 ≪우해이어보 牛海異魚譜≫에는 삼치를 한자로 ‘鰺○’로 쓰고 그 음이 삼치(參差)라고 하였다.
또, 선상인(船商人)의 말을 전하여 말하기를 삼치는 초여름에 수변(水邊)에 많이 와서 뱀·구렁이와 교미하여 가을에 알을 낳아 얕은 곳의 기름진 모래에 묻어두는데 이듬해 봄에 부화한다고 하였다. 서유구(徐有榘)의 ≪난호어목지 蘭湖漁牧志≫에는 삼치를 마어라 하고, 한글로 ‘삼치’라고 기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남·서해에 모두 있다. 모양은 조기[石首魚]와 비슷하나 몸이 둥글고 머리가 작다. 주둥이는 길고 비늘은 잘다. 등은 청흑색으로서 기름을 문지른 것처럼 빛나고 윤기가 있다. 등쪽 밑 좌우에는 검은 반문이 있고 배는 순백색이다. 맛이 극히 좋다. 큰 것은 길이가 1장(丈) 가량 되고 둘레가 4∼5자 가량 된다. 북쪽 사람은 마어라고 부르고 남쪽 사람은 망어(䰶魚)라고 부르는데 어가(漁家)는 즐겨 먹으나, 사대부는 그 이름을 싫어하여 잘 먹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치의 크기는 주척(周尺)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주 큰 것으로 평삼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평삼치는 몸길이가 1.5m, 체중이 15㎏에 달한다. 또, 삼치의 이명이 망어이기 때문에 사대부는 잘 먹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1905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업조사보고≫에도 충청도 연해에서는 삼치를 우어(憂魚)라고 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과거에는 삼치자원이 아주 풍부하였다. ≪한해통어지침 韓海通漁指針≫에 의하면 강원도 연해에서는 지인망(地引網)으로 잡는데, 한 그물에 3,000∼4,000마리를 잡는 일도 있다고 하였다. ≪한국수산지 韓國水産誌≫ 제1집에는 삼치의 어군 중에서 큰 것은 길이가 수십 리에 달한다고 하였다.
어구에 대해서는 강원도와 함경도 연해에서는 지인망을 사용하나 거제도 연해에서는 부망(敷網)을 사용하여 대구·청어와 함께 잡아오다가 점차 유망(流網)과 끌낚시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오늘날 삼치어업에서는 꼬임낚시[擬餌釣]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1900년대 초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대형선망으로 많이 잡는다.
어획량을 보면 일제시대에 있어서는 1926년 근 8,000M/T이 잡혀 기록을 세운 일이 있는데, 같은 시대의 말기에는 연간어획량이 3,000M/T 이하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광복 이후 증가추세를 보여 1987년 삼치류의 어획량이 2만974M/T에 달하였다. 삼치는 선어로서 일본에 많이 수출되고 있고 구이로 일본식 음식점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