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발해시대의 수도.
내용
785년 무렵 다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로 천도하더니 제5대 성왕 대화여(大華璵)에 이르러 다시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발해국이 망할 때까지의 수도였다.
≪요사 遼史≫에는 ‘홀한성(忽汗城)’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상경용천부가 홀한하(忽汗河), 즉 지금의 목단강(牧丹江)변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발해국을 멸한 거란은 발해국의 옛 영토에 동단국(東丹國)이라는 괴뢰국가를 세워 이 상경용천부를 수도로 하고 천복성(天福城)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동단국의 수도를 요양(遼陽)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뒤 폐허가 되어 성터와 왕궁터가 남아 있다.
이 유적은 1933∼1934년에 일본의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에 의하여 조사, 발굴되었다. 이로써 1,200여 년간 지하에 묻혔던 발해국의 문화가 밝혀져, 발해역사의 해석에 많은 진전을 가져왔다.
참고문헌
- 『신당서(新唐書)』
- 『발해정치사연구』(송기호, 일조각, 1995)
- 「唐代渤海上京龍泉府遺址」(陳顯昌, 『文物』 1980年 9期)
- 「北滿の二大古都址-東京城と白城-」(鳥山喜一, 『京城帝國大學滿蒙文化硏究會報告』, 1935)
- 「東京城外光古屯土城址」(黑田源次, 『滿洲史學』 1-1, 1937)
- 「東京城」(原田淑人·駒井和愛, 『東方考古學叢利甲種』Ⅴ, 1939)
- 「渤海國首都の調査」(村田治郞, 『滿洲の蹟蹟』,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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