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6년에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평양성 성벽돌 명문에 의하면 “기축년(己丑年) 5월 28일 처음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서쪽으로 향하여 11리(里) 구간은 소형(小兄) 상부약모리(相夫若牟利)가 쌓는다.”고 한다.
이 명문의 상부약모리는 동일인명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약모리(若牟利)를 인명, 상부(相夫)를 관직명으로 보기도 한다. 또 상부(相夫)를 상부(上部)의 다른 이름으로 출신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상부약모리는 소형의 관등을 갖고 평양성 외성의 11리 구간의 축성을 책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22년(양원왕 8)에 장안성을 쌓고 589년(평원왕 28)에 장안성으로 천도하였으므로, 축성을 시작한 연대인 기축년은 569년(평원왕 11)에 비정된다.
그러나 다른 평양성 성벽돌의 명문에는 589년(己酉年)에 외성의 축조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축년은 기유년의 잘못일 가능성도 있다. 이 명문이 새겨진 성벽돌은 현재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김정희(金正喜)의 석문(釋文)이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