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집』은 조선 후기 학자 박세당의 시와 산문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20권 10책의 목판본으로, 서문·발문이 없어 정확한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17세기 사상계에서 큰 위상을 점하는 학자의 학문과 사상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문헌이다. 「영의정백헌이공신도비명」은 이경석과 송시열의 갈등을 논한 문제작으로 저자가 유배형에 처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계긍(季肯), 호는 서계(西溪) · 서계초수(西溪樵叟) · 잠수(潛叟)이다. 박응천(朴應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참찬 박동선(朴東善)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정(朴炡)이다. 『서계집(西溪集)』 외에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 『색경(穡經)』 등을 저술하였다.
20권 10책의 목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제1책에 총목이 있고, 다시 각권 머리에 목록이 실려 있다. 총목에는 권16까지만 기재되어 있다. 권14에 시, 권5에 소차(疏箚), 권6에 소차 · 계사(啓辭) · 공함(公緘), 권7에 서(書) · 변론(辨論) · 서(序), 권8에 서(序) · 기 · 제발(題跋) · 제문 · 잡저, 권9·10에 지명(誌銘), 권11·12에 비명(碑銘), 권13에 갈명(碣銘), 권14에 갈명 · 묘표, 권15에 시장(諡狀) · 행장, 권16에 행장 · 유사, 권1720에 간독이 수록되어 있다.
권1~4는 시록별(詩錄別)로 편차된 시 800여 수가 실려 있다. 동행습낭(東行拾囊)은 1648년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형 박세견(朴世堅)의 흡곡(歙谷) 임소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이고, 잠고(潛稿)는 잠수(潛叟)라 자호(自號)한 소싯적 시작(詩作)을 모아 놓았다. 북정록(北征錄)은 1666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함경북도 병마평사로 다녀오면서 지은 시, 사연록(使燕錄)은 1668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절사(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을 다녀오면서 지은 시들이다.
석천록(石泉錄) 상(上)은 1668년 1월 파직되어 석천(石泉)으로 돌아온 뒤 1680년 10월 도성에 들어가기 전까지 양주(楊州) 석천에서 지은 시, 석천록 중(中)은 1680년 도성에 들어갔다가 곧 체차되어 석천으로 돌아온 뒤부터 1687년까지 그곳에서 지내면서 지은 시들이다. 후북정록(後北征錄)은 1688년 봄에 함경도 순영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풍악(楓岳)에 들렀을 때 지은 시이고, 석천록 하(下)는 그 이후 석천에서 지내면서 지은 시들이다. 그리고 보유록(補遺錄)은 문집을 간행하면서 저자의 원고(原稿)에 빠졌던 것을 보충한 것이다.
고시는 드물고 특히 칠언율시가 많다. 이민서(李敏敍), 김만기(金萬基), 이경억(李慶億), 윤증(尹拯), 남구만(南九萬), 박세채(朴世采) 등과의 차운시(次韻詩), 여성제(呂聖齊), 홍주국(洪柱國), 아들 박태보(朴泰輔) 등에게 지어준 송시(送詩), 승려 축환(竺還), 해안(海眼) 등에게 준 증시(贈詩), 윤지미(尹趾美), 최후상(崔後尙), 남이성(南二星), 자형(姊兄) 이영휘(李永輝)와 그 형제 등에 대한 만시(挽詩), 과제(課製)로 지은 시, 여러 수의 기행시 등이 있다.
소차에는 1664년에 교리로서 올린 차자(箚子)부터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사직소차(辭職疏箚)이다. 계사는 김좌명(金佐明)과 이은상(李殷相), 임의백(任義伯)에 대한 논계(論啓)와 궁가(宮家)의 절수(折受)에 관한 논계 등이다. 공함은 1671년에 통진현감(通津縣監) 재직 시 진휼할 때의 일을 10년이 지난 뒤 문제 삼아 추고(推考)한 데 대해 올린 것이다.
서(書) 7편은 윤증, 남구만, 신익상(申翼相), 박세채, 최석정(崔錫鼎)에게 준 편지이다. 노장설(老莊說)에 관한 견해, 10대조 박상충(朴尙衷)에 대한 평가, 전제(田制) 개혁론(改革論), 김시습(金時習)의 동봉사우(東峯祠宇) 건립에 관한 일 등 주요 내용을 다룬 편지들을 모아 놓았다. 서(序)에는 저자 자신이 찬술한 『색경』, 최명길의 『지천집(遲川集)』, 김득신(金得臣)의 『백곡집(柏谷集)』, 『반남박씨세보(潘南朴氏世譜)』 등에 대한 서문과 송서(送序) 여러 편이 실려 있다. 잡저 중 「매월당영당권연문(梅月堂影堂勸緣文)」과 「청한자진찬(淸寒子眞贊)」은 김시습과 관련하여 지은 글이다.
저자의 사망한 아내들, 박세견, 신익상 등의 묘지명과 김좌명, 최명길, 이경석(李景奭) 등의 신도비명이 실려 있는데, 특히 이경석의 신도비명 「영의정백헌이공신도비명(領議政白軒李公神道碑銘)」에서는 이경석과 송시열의 갈등을 서술하면서 송시열을 직척(直斥)하여 유배의 명까지 받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 자신을 묘주로 삼아 지은 묘표(墓表)도 있다.
권1720에는 추각된 간독들이 실려 있다. 권1718은 아들과 조카, 손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들의 안부를 묻고 학문상의 의문에 답하거나, 정치 현안에 대해 조언하거나 지방관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권19~20은 남구만, 윤증, 나양좌(羅良佐), 김성적(金盛迪), 이유(李濡), 신여석(申汝晳), 남학명(南鶴鳴), 조태억(趙泰億), 이정신(李正臣), 이탄, 이덕수, 이덕부(李德孚) 등 사우(士友), 문인(門人)들에게 보낸 편지와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가 섞여 실려 있다. 환국(換局)의 와중에서 현황과 안부를 묻는 내용이 많고, 아들 박태보의 죽음 이후 문집 간행을 위해 노력한 내용 등도 알 수 있다. 조카나 손자들에게는 작문에 대한 평가, 집안일에 대한 의견, 학문의 권면 등을 주로 언급하였다.
17세기 사상계에서 큰 위상을 점하는 학자의 학문과 사상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문헌이다. 「영의정백헌이공신도비명」은 이경석과 송시열의 갈등을 논한 문제작으로 저자가 유배형에 처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