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상·중·하 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첩에는 이정신의 시에 대한 차운시(次韻詩)와 중국 역대 시문을 쓴 필적이 실려 있고, 중·하첩에는 박세당이 이정신에게 보낸 간찰이 날짜순으로 실려 있다. 글씨는 해·행·초(楷行草)로 썼고 글씨의 크기는 대·중·소자가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다.
『박세당 필적 서계유묵(朴世堂 筆蹟 西溪遺墨)』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세당(朴世堂)이 쓴 행초(行草) 서첩(書帖)으로 상첩(上帖)·중첩(中帖)·하첩(下帖)의 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문인(門人) 이정신(李正臣)에게 써준 것이다. 상첩은 이정신의 시를 차운한 자작시와 중국의 시문을 행초(行草)로 써서 이정신에게 준 것이다. 내용은 주로 자연에 대한 사랑과 혼탁한 세상을 멀리하고자 하는 문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앞쪽에 대자로 쓴 ‘고황천석(膏肓泉石)’, ‘벽산청류(碧山淸流)’, ‘춘풍추월(春風秋月)’, ‘만수청풍(滿袖淸風)’은 박세당의 연하벽(煙霞癖)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 평소 은자(隱者)의 전형으로 동경한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당나라 여암(呂巖), 잠삼(岑參), 이백(李白) 등 호방한 은사의 시를 썼다.
중첩과 하첩은 각각 29통과 25통의 간찰로 이정신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중첩 마지막 1통은 처남 남구만(南九萬)에게 보낸 간찰이고, 하첩 마지막의 6통은 아들 박태보(朴泰輔)의 간찰이다. 이들 간찰은 1679∼1702년 사이에 쓴 것으로 대부분 『서계집』에 실려 있지 않다. 그중 박세당이 이정신에게 중국 서화첩을 빌려본 뒤 역대 명가 글씨에 대해 품평한 대목과 박태보가 「서계초상」 제작에 따른 제반사를 언급한 내용이 있어 주목된다.
상첩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는 박세당 서풍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박세당은 당나라 안진경(顔眞卿)의 서풍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글씨의 짜임과 필획이 천연스럽고 질박한데서 그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그의 이러한 서풍은 처남 남구만과 두 아들 태유(泰維)와 태보(泰輔)에게 영향을 미쳐 안진경체의 본격적인 수용을 촉진시켰고 이후 18세기 안진경 서풍의 유행을 이끌었다.
박세당과 이정신의 애틋한 사제관계를 알려주는 필적으로, 중국 역대명가 글씨에 대한 박세당의 품평과 감식안, 그리고 「서계초상」 제작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