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 행초 표암유채

  • 예술·체육
  • 문헌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豹菴)강세황(姜世晃)이 역대 명인의 시구(詩句) 가운데 일부 구절을 뽑아 쓴 행초(行草) 서첩.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유지복
  • 최종수정 2026년 05월 12일
표암유채 미디어 정보

표암유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豹菴)강세황(姜世晃)이 역대 명인의 시구(詩句) 가운데 일부 구절을 뽑아 쓴 행초(行草) 서첩.

구성 및 형식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선장(線裝)으로 장정되어 있는 표지에는 후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 ‘표암유채(豹菴遺彩)’라는 글씨가 행서로 씌어있다. 총 13장 26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글씨는 대부분 행서를 위주로 초서를 간간이 섞어 썼다. 내용은 오언시(五言詩), 사언시(四言詩), 칠언시(七言詩), 강세황의 자발(自跋)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내용

『표암유채(豹菴遺彩)』는 강세황이 사망하기 얼마 전인 1790년(정조 14) 겨울에 쓴 것으로, 강세황 특유의 완숙한 서풍을 보여주는 행초 필적이다. 내용은 당(唐) 양거원(楊巨源)의 「봄날 황제의 만수무강을 위해 삼가 올리다(春日奉獻皇壽無疆詞)」 중 일부를 포함한 오언시 6수, 당(唐) 도잠(陶潛)이 자신이 늙은 나이에도 이룬 게 없음을 근심하면서 지은 사언시 「무궁화(榮木)」 중 일부, 당송(唐宋)의 칠언시 6수, 마지막으로 강세황 자신의 발문이 있다. 글씨는 대부분 행초로 씌어있으며 서첩도 크고 글자도 큰 편이다. 오늘날 강세황의 필적으로 서첩·간찰·병풍 등이 다양하게 전하지만, 이 서첩처럼 연대와 내력이 분명한 예는 드물다.

말미의 강세황의 자발(自跋)에 “이 종이의 이름은 죽청지(竹淸紙)로, 우리나라 남쪽 고을에서 생산된다. 비문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이 종이를 구하는데, 촘촘하고 얇아서 모각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림을 그리려 해보니 잘 맞지 않아 마침내 전인(前人)의 가구(佳句)를 써서 이에 응한다. 경술년(1790) 겨울 표옹은 쓴다.[此紙名竹淸紙 出於我東之南邑 寫碑文者 必求是紙 以其緊薄而便摹刻也 今欲作畵則不相宜 遂書前人佳句以應之 庚戌冬豹翁書]”라고 적혀있다. 이처럼 서첩의 내용 가운데 특정 종이를 재료로 썼음을 언급한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죽청지는 예로부터 비문을 쓰기에 적합한 종이로 문헌에 자주 언급되어 왔다. 이 외에도 죽청지는 영ㆍ정조 연간의 여러 궁중 행사를 기록한 각종 의궤 및 기명(器皿)과 칙사의 예물에 쓰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음이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강세황은 자신의 글씨를 ‘이왕미조(二王米趙)’라 하여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서법을 기초로 미불(米芾)과 조맹부(趙孟頫)의 서풍을 가미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중년 이후 미불을 중심으로 자득한 행초서를 노년에까지 구사하였다. 특히 이 필적은 강세황이 78세 되던 1790년 겨울에 쓴 필적이다. 그는 그 해 겨울을 채 못 넘기고 이듬해 정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표암유채』는 죽음을 불과 며칠 앞두고 쓴 글씨인 셈이다. 그런데 이 필적에서는 중년 이후 형성된 강세황 특유의 행초서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그의 필력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시기까지도 장년기의 서풍이 일관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필적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하겠다.

의의와 평가

강세황이 78세 되던 1790년(정조 14) 겨울에 쓴 이 필적은 죽청지에 썼음을 밝혀 특정 종이를 언급한 점과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유묵 중 가장 말년작에 속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 - 『이재난고(頤齋亂藁)』

  • -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 - 『한국의 옛글씨』(문화재청, 2010)

주석

  • 주1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