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가로로 긴 두루마리로 장황되어 있다. 붉은색 바탕의 종이에 해서로 4자씩 21줄에 걸쳐 썼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김정희의 아호인과 성명인이 날인되어 있다. 황색 표장의 왼쪽에 10방 오른쪽에 9방의 인장이 찍혀있고 상하에 각각 35방의 인장이 찍혀있다.
『김정희 해서 묵소거사자찬(金正喜 楷書 默笑居士自讚)』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대표적 서화가인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중국산으로 여겨지는 붉은색 냉금지(冷金紙)에 가로 세로로 네모난 격자(格子)를 그은 다음 정중한 해서(楷書)로 쓴 두루마리 글씨이다.
주된 내용은 맨 앞 구절의 “침묵해야할 때 침묵하는 것이 시의(時宜)에 가깝고, 웃어야할 때 웃는 것이 중도(中道)에 가깝다(當默而默近乎時當笑而笑近於中).”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시의적절한 침묵과 미소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김정희의 친우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이 말년에 실어증으로 고생했던 것과 관련하여 김유근이 ‘묵소거사(默笑居士)’라는 별호를 만들어 자찬문(自讚文)을 짓자 김정희가 그것을 써준 것으로 여겨진다. 한 줄에 4글자씩 21줄을 해서로 쓰고 검은 먹을 입힌 “완당(阮堂)”과 “김정희인(金正喜印)”이 찍혀있다.
글씨는 당(唐) 구양순(歐陽詢)과 안진경(顔眞卿)의 해서풍을 바탕으로 청(淸)옹방강(翁方綱)의 필의(筆意)가 가미되어 있다. 이는 해서체에 관한 김정희의 시각을 잘 대변해주는 예이며, 이러한 점에서 김정희 노년 해서의 전형이 될 만하다. 글씨 상하단과 표장 사이에 찍힌 각각 35개의 인영(印影)과 좌우측 표장에 찍힌 10개·9개의 인영은 인주색이 같아 동시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하단의 "황산(黃山)”, 우측의 “옥경산방(玉磬山房)”, 좌측의 “옥경서재(玉磬書齋)”와 “묵소거사(默笑居士)”·“김유근인(金逌根印)”은 모두 김유근과 관련된 인장이다.
이 글씨의 제작 시기는 표장에 김유근의 인장이 찍혀 있는 점에서 그가 사망한 1840년을 하한(下限)으로 잡을 수 있으며, 또 김유근이 만년에 4년간 실어증으로 고생한 것과 관련하여 1837년을 상한(上限)으로 잡을 수 있다.
김유근 말년의 별호인 ‘묵소거사(默笑居士)’에 대한 자찬문(自讚文)을 김정희가 썼다는 점에서 이들 간의 교유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