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명필 ()

서예
유물
1664년(현종 5)에 이우(李俁)가 간행한 법첩(法帖).
정의
1664년(현종 5)에 이우(李俁)가 간행한 법첩(法帖).
개설

『동국명필』은 조선 왕실의 종친인 이우(1637∼1693)가 1664년(현종 5)에 신라의 김생(金生)부터 조선 중기의 김현성(金玄成)까지 25인의 필적을 돌에 새겨 간행한 법첩(명필의 글씨를 돌이나 나무에 새겨 만든 서첩)이다. 법첩을 편집·간행한 이우는 선조의 열두째 아들인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의 아들로 15세에 낭선군(朗善君)에 봉해졌고, 자는 석경(碩卿), 호는 관란정(觀瀾亭)이다.

내용

『동국명필』에는 신라의 김생·최치원(崔致遠)·승려 영업(靈業)·무명씨(無名氏) 등 4인, 고려의 승려 탄연(坦然)·문공유(文公裕)·유공권(柳公權)·이암(李嵒)·한수(韓脩) 등 5인, 조선의 성석린(成石璘)·신장(申檣)·최흥효(崔興孝)·강희안(姜希顔)·이용(李瑢)·성임(成任)·정난종(鄭蘭宗)·김희수(金希壽)·성수침(成守琛)·이황(李滉)·황기로(黃耆老)·송인(宋寅)·성자제(成子濟)·양사언(楊士彦)·한호(韓濩)·김현성 등 16인을 포함해 모두 25인의 필적이 차례로 실려 있다.

서체는 해서·행서·초서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신라부터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서가의 글씨는 비문(碑文) 및 불가의 법어(法語) 중 일부를 쓴 것이 주를 이루며,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서가의 글씨는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의 시가 대부분이다.

마지막에 이우 자신이 쓴 발문과 1664년의 간기가 있어 『동국명필』을 간행한 배경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서법이 김생으로부터 진(晉)·당(唐)의 필의(筆意)를 얻은 자가 대대로 끊이지 않았으나 세대가 멀어지고 난리를 겪느라 전해지는 진적(眞蹟)이 드물게 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김생을 위시한 역대 진적 또는 금석(金石)에 남아 있는 필적을 베낀 뒤 돌에 새겨 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국명필』은 각 면의 오른쪽 하단에 면수를 새겨 놓아 이우의 발문을 끝으로 모두 14면에 새겼음을 알 수 있다. 이 뒤로 목판에 새긴 필적이 2면 추가되어 있는데 이는 『동국명필』에 실린 필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당나라 승려 영철(靈澈)의 칠언절구 「동림사수위단자사(東林寺酬韋丹刺史)」, 전기(錢起)의 오언절구 「숙동구관(宿洞口館)」, 가도(賈島)의 오언절구 「검객(劒客)」, 위응물(韋應物)의 오언절구 「추재독숙(秋齋獨宿)」을 모각한 것인데, 이는 후대의 장첩(粧帖) 과정에서 소장자에 의해 추가로 첨부된 것으로 보인다.

특징

『동국명필』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관란정석각(觀瀾亭石刻)』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조선명가필첩(朝鮮名家筆帖)』과 유사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두 서첩 모두 김생으로부터 한호까지 25인의 필적이 수록되어 있으나 수록된 서예가에 다소 차이가 있다. 두 서첩에는 『동국명필』에 수록된 유공권·이황·성자제·김현성의 필적이 빠진 대신 박팽년(朴彭年)·성세창(成世昌)·김구(金絿)·성종의 필적이 들어가 있다. 두 서첩은 본래 동일한 판본이다. 다만 『조선명가필첩』에는 비해당 이용의 필적이 누락되었고, 『관란정석각』에 수록된 성종의 필적 대신 『동국명필』에 수록된 황기로의 초서 한 점이 더 추가되어 있다.

두 서첩 역시 말미에 이우의 발문이 있는데, 『동국명필』에는 1664년의 간기가 있는 데 반해 두 서첩에는 이보다 3년 이른 1661년(현종 2)의 간기가 있다. 또한 『동국명필』의 첫 면에는 ‘동국명필(東國名筆)’이라는 권수제(卷首題)가 제대로 새겨져 있는 데 반해 나머지 두 서첩에는 권수제가 따로 없다. 그리고 두 서첩에서 비해당 이용의 필적이 들어갈 앞부분은 나중에 새겨 넣을 것을 고려한 듯 공란으로 남아 있고, 『관란정석각』에는 성종의 어필이 이례적으로 중간에 끼여 있어 보통 법첩에서 어필을 맨 앞에 수록하는 일반적인 편집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두 서첩은 『동국명필』을 정식으로 간행하기 위한 전단계로서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동국명필』에는 신라의 김생부터 16세기까지의 대표적 명필들의 필적이 실려 있어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664년에 간행된 법첩으로서 3년 전에 편간된 『관란정석각』의 완성본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법첩 간행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백년록(百年錄)』
「낭선군 이우의 서화 수장과 편찬」(황정연, 『장서각』 9, 2003)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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