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근묵은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아 엮은 서첩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과 먹으로 쓴 글씨라는 뜻의 ‘묵적’이 결합된 말이다. 고려 말 정몽주부터 근대의 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수록하였다. 『근묵』에 실린 서체는 행서와 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과 시의 비중이 높다. 원본 34책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인본 2권과 원색 영인본 5권으로 출판하였다.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실려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眞蹟)을 모아 엮은 서첩.
개설
서지 사항
내용
『근묵』의 필적을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書簡) 724점, 시(詩) 359점, 제액(題額) 15점, 기(記) 10점, 부(賦) 7점, 서(序) 5점, 화제(畵題) 3점, 증언(證言) 2점, 비명(碑銘) 2점, 발(跋) 2점, 찬(贊) 1점, 잠언(箴言) 1점, 법어(法語) 1점, 표제(表題) 1점, 유지(諭旨) 1점, 물목(物目) 1점, 종명(鐘銘) 1점 등으로 서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서간은 증답(贈答)의 형식과 의례적인 문안(問安)이 주요 내용을 이루지만, 선물 수수, 인사 청탁, 노비 추쇄, 서적 및 출판, 의식주 문제 등 일상과 관련된 진솔한 사연이 많이 실려 있어 당시의 사회상 및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근묵』에 실린 1136점의 글씨는 모두 개개인의 필적이지만 특정 인물들끼리 서로 동시에 주고받았던 일련의 필적도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별연(餞別宴)에서 주고받은 송별시이다. 이를테면 중종 때의 문신 이현보(李賢輔)가 1512년(중종 7)에 고향인 안동 분천(汾川)에 부모의 남은 여생을 아쉬워하며 애일당(愛日堂)을 짓고 칠언절구 2수를 남겼는데, 이장곤(李長坤) · 박상(朴祥) · 정사룡(鄭士龍)이 이에 차운하여 남긴 시가 『근묵』에 실려 있다. 또한 선조 때의 문신 이정귀(李廷龜)가 외교 임무를 띠고 명(明)에 4차례 사신으로 파견된 적이 있는데, 사행을 떠나기 앞서 받은 송별시 40여 수가 모두 『근묵』에 실려 있고, 박정(朴炡)의 경우도 함평현감으로 좌천되었을 당시 받은 송별시 30여 수가 『근묵』에 실려 있어 일련 자료로서는 상당히 많은 양이 수록되어 있다.
『근묵』에 실린 필적의 진위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오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를테면 안평대군 이용(李瑢)의 글씨로 실린 시는 김육(金堉)이 1636년(인조 14)에 명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지은 시로 그의 문집 『잠곡유고(潛谷遺稿)』에도 실려 있어 시기가 맞지 않으며, 「소나무 지팡이를 충암에게 주며(松杖贈冲菴)」라는 제목으로 실린 박훈(朴薰)의 시는 실제로는 김정(金淨)이 박수량(朴遂良)이라는 인물에게 지어준 시로 김정의 문집 『충암집(冲庵集)』에도 실려 있어 저자가 뒤바뀌어 있다. 이 밖에도 대필(代筆)로 쓴 것임을 명시한 사례로 임수적(任守迪)과 정언황(丁彦璜)의 서간을 들 수 있다. 글씨를 쓴 필자와 서풍이 시기적으로 상충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면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내용 해설」(하영휘, 『근묵』,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2009)
- 『근묵』(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편, 청문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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