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묵 ()

서예
문헌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眞蹟)을 모아 엮은 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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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근묵은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을 모아 엮은 서첩이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과 먹으로 쓴 글씨라는 뜻의 ‘묵적’이 결합된 말이다. 고려 말 정몽주부터 근대의 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수록하였다. 『근묵』에 실린 서체는 행서와 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과 시의 비중이 높다. 원본 34책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인본 2권과 원색 영인본 5권으로 출판하였다.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실려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1943년 서예가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眞蹟)을 모아 엮은 서첩.
개설

『근묵』은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이 고려 말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진적(眞蹟)을 모아 만든 서첩이다. 고려 말의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부터 근대기의 이도영(李道榮, 1884∼1933)에 이르기까지 명사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모아 모두 34첩에 수록하였다. 표지에 전서(篆書) 대자 글씨로 ‘근묵(槿墨)’이라고 쓰고 ‘팔십위(八十葦)’라는 관서와 인장이 찍혀 있어 오세창이 80세 되던 1943년에 이 서첩의 편집을 완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근묵(槿墨)’이란 우리나라를 뜻하는 ‘근역(槿域)’과 먹으로 쓴 글씨를 뜻하는 ‘묵적(墨蹟)’이 결합된 말로, 오세창의 편집에 의해 1911년에 완성된 『근역서휘(槿域書彙)』와 더불어 모두 친필인 진적을 싣고 있어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서지 사항

원본 총 34책. 영인본(2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1981), 원색 영인본(5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2009). 오세창 집안에 전해 오던 『근묵』은 1964년에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양도되었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1981년에 상·하 2권의 흑백본으로 영인 출판하였고, 2009년에는 원본과 똑같은 1:1 크기로 원색 영인하고 마지막 권에 번역본을 붙여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5권으로 출판하였다.

내용

『근묵』에 실린 묵적을 서체별로 분류하면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 해서 57점, 전서 4점, 예서 12점으로 행·초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록된 묵적 중 서간이 가장 많기 때문에 서간에 많이 사용되었던 행·초서의 비중이 가장 크다. 수록된 행서와 초서는 예술성을 염두에 두고 쓴 글씨가 아님에도 시대에 따른 서풍의 변화상이 잘 나타난다. 행서와 초서에는 최흥효(崔興孝)·김시습(金時習) 등 조선 초기 명필로부터 안중식(安中植)·김규진(金圭鎭) 등 근대기에 이르는 역대 명필의 글씨가 빠짐없이 실려 있다. 전서와 예서 필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수록되어 있으나, 이한진(李漢鎭)·유한지(兪漢芝) 등 영·정조 연간의 명필 외에도 김승조(金承祖)·최헌수(崔憲秀) 등 필명이 없었던 인사들의 수준 높은 글씨가 실려 있어 서예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로서 매우 가치가 높다.

『근묵』의 필적을 문장의 종류로 분류하면 서간(書簡) 724점, 시(詩) 359점, 제액(題額) 15점, 기(記) 10점, 부(賦) 7점, 서(序) 5점, 화제(畵題) 3점, 증언(證言) 2점, 비명(碑銘) 2점, 발(跋) 2점, 찬(贊) 1점, 잠언(箴言) 1점, 법어(法語) 1점, 표제(表題) 1점, 유지(諭旨) 1점, 물목(物目) 1점, 종명(鐘銘) 1점 등으로 서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서간은 증답(贈答)의 형식과 의례적인 문안(問安)이 주요 내용을 이루지만, 선물 수수, 인사 청탁, 노비 추쇄, 서적 및 출판, 의식주 문제 등 일상과 관련된 진솔한 사연이 많이 실려 있어 당시의 사회상 및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근묵』에 실린 1136점의 글씨는 모두 개개인의 필적이지만 특정 인물들끼리 서로 동시에 주고받았던 일련의 필적도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별연(餞別宴)에서 주고받은 송별시이다. 이를테면 중종 때의 문신 이현보(李賢輔)가 1512년(중종 7)에 고향인 안동 분천(汾川)에 부모의 남은 여생을 아쉬워하며 애일당(愛日堂)을 짓고 칠언절구 2수를 남겼는데, 이장곤(李長坤)·박상(朴祥)·정사룡(鄭士龍)이 이에 차운하여 남긴 시가 『근묵』에 실려 있다. 또한 선조 때의 문신 이정귀(李廷龜)가 외교 임무를 띠고 명(明)에 4차례 사신으로 파견된 적이 있는데, 사행을 떠나기 앞서 받은 송별시 40여 수가 모두 『근묵』에 실려 있고, 박정(朴炡)의 경우도 함평현감으로 좌천되었을 당시 받은 송별시 30여 수가 『근묵』에 실려 있어 일련 자료로서는 상당히 많은 양이 수록되어 있다.

『근묵』에 실린 필적의 진위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오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를테면 안평대군 이용(李瑢)의 글씨로 실린 시는 김육(金堉)이 1636년(인조 14)에 명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지은 시로 그의 문집 『잠곡유고(潛谷遺稿)』에도 실려 있어 시기가 맞지 않으며, 「소나무 지팡이를 충암에게 주며(松杖贈冲菴)」라는 제목으로 실린 박훈(朴薰)의 시는 실제로는 김정(金淨)이 박수량(朴遂良)이라는 인물에게 지어준 시로 김정의 문집 『충암집(冲庵集)』에도 실려 있어 저자가 뒤바뀌어 있다. 이 밖에도 대필(代筆)로 쓴 것임을 명시한 사례로 임수적(任守迪)과 정언황(丁彦璜)의 서간을 들 수 있다. 글씨를 쓴 필자와 서풍이 시기적으로 상충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면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의의와 평가

『근묵』에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필적이 대거 수록되어 있어 서예사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 있는 시기와 인물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다양한 인영(印影)이 찍혀 있어 시기에 따른 전각(篆刻) 각풍과 전통적 낙관 방식의 변모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더욱이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인장을 모아 편간한 『근역인수(槿域印綬)』에 실려 있지 않은 인영이 많아 한국 전각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참고문헌

「내용 해설」(하영휘, 『근묵』,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2009)
『근묵』(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편, 청문사, 1981)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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