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교남서화연구회 회장, 조선미술전람회 부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서화가.
내용
1909년도 상해와 일본을 여행하였고,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특히 포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그의 문인화법의 영향을 받은 문기(文氣) 짙은 묵죽(墨竹) 등 사군자를 그리게 되었다. 글씨는 매우 격조 있는 행서(行書)를 남겼다.
대구에 살면서 영남일원의 대표적 서화가로 최대의 명성을 누렸다. 1922년 대구에서 교남서화연구회(嶠南書畫硏究會)를 발족시켜 회장이 된 뒤, 서화연구생들을 지도하였다. 김진만(金鎭萬) · 배효원(裵孝源) · 서동균(徐東均)과 성재휴(成在烋)가 그 시기의 그의 제자이다.
1922년부터 서울에서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鮮展)가 열리게 되자 박영효(朴泳孝)·정대유(丁大有)·김돈희(金敦熙)·김규진(金圭鎭) 등과 더불어 ‘서(書)와 사군자’ 부심사위원을 여러번 역임하였으나 한번도 작품을 출품하지는 않았다. 이즈음부터 서적 출판에 관여하여 출판 편집인으로서 활동했으며, 대구 문인화단의 구심적 역할을 했다.
참고문헌
- 『한국현대미술사(韓國現代美術史) -동양화(東洋畵)-』(이구열, 국립현대미술관, 1976)
- 『한국서화인명사서(韓國書畵人名辭書)』(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 「석재 서병(1862~1936)의 시서화와 대구의 문인화」(이인숙, 『석재 서병오 서화전』, 2011)
- 「석재서병오연구(石齋徐丙五硏究) -그의 중국행(中國行)을 중심으로-」(김영기, 『한국의 근대미술』5,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