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군읍지』는 1902년경 충청남도 서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에 1902년에 부임한 이휘면까지 기록되어 있어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해안지대인 서산군의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여 국방과 군사에 관련한 항목을 상세히 기재하였다. 『여지도서』와 항목 구성에 있어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편찬관이 변화하였고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행정과 제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서산군읍지(瑞山郡邑誌)』의 저자 및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선생안(先生案) 항목에 1902년(광무 6)에 부임한 이휘면(李輝冕)까지 수록되어 있어, 편찬 시기를 1902년경으로 추정한다.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능침(陵寢),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阨), 봉수(逢燧), 누정(樓亭), 제영(題詠), 사찰,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선생안 등 37개로 구성하였다.
해안지대인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지금의 [서산시]의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여 관애와 군병 등 국방과 군사에 관련한 항목이 상세하다. 선생안 항목에는 서산군에 부임한 역대 264인의 관료 명단[읍쉬 명단(邑倅 名單)]을 수록하여, 지역에 부임한 인사들의 성향을 살펴볼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는 34개 항목으로 『서산군읍지』와 항목 구성에 있어 차이가 난다. 『서산군읍지』에는 『여지도서』에 없는 4개 항목[능침, 관애, 제영, 선생안]이 추가되었고, 『여지도서』에는 『서산군읍지』에 없는 명환 항목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한전, 수전, 진공, 조적, 책판 항목이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시기를 달리해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청남도읍지(忠淸南道邑誌)』에 수록된 「서산군읍지」와 내용이 같다.
다만 선생안 항목에 수록된 인물들만 차이가 나는데, 1871년본 『호서읍지』 중 「서산군읍지」의 선생안 항목에는 1870년(고종 7)에 부임한 오병선(吳秉善)까지 수록되어 있고, 1899년본 『충청남도읍지』 중 「서산군읍지」의 선생안 항목에는 1897년(광무 1)에 부임한 김연규(金年圭)까지 수록되어 있다. 1906년(광무 10)과 1910년 사이에 베껴 쓴 『충청남도읍지』 중 「서산군지」의 선생안 항목에는 1873년(고종 10)에 부임한 김영준(金俊永)까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본 읍지인 『서산군읍지』에는 1902년에 부임한 이휘면까지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와 『서산군읍지』의 항목 구성이 차이 나는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8세기의 전국 지리지와 19세기의 지방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그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두 문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서산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광범위하게 편찬된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地誌)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다. 『서산군읍지』 역시 조선시대 서산 지역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방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