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역도연맹회장, 대한씨름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같은 해 11월 30일 조선체력증진법연구소를 조직하여 서울 화동 자택에 현판을 걸고 역도를 보급시켰다. 1930년 9월 자택에 20여평의 도장을 건설하고 ‘중앙체육연구소’라 명명하는 한편, 조선체력증진법연구회를 이에 흡수시켰다.
1938년 자신이 창설한 역도연맹의 회장을 맡았으며, 1946년 대한씨름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체육인으로서 ≪현대일보≫를 창간하였고, 1950년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 그는 일제침략으로 쇠운에 빠진 민족운명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의지를 가진 젊은이를 양성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역도를 보급,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체육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도덕생활에까지 연결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1936년 ‘역기(力技)’를 ‘역도(力道)’라는 용어로 개칭하였다. 광복 후 반공노선의 선봉에서 대한청년단을 결성하여 범청년운동을 전개하는 등 조국건설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한역도연맹에서는 우리나라 역도의 발전과 보급에 대한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서상천배역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저서에 ≪현대체력증진법≫·≪심신단련법≫·≪역도≫ 등이 있다.
참고문헌
- 대한체육회50년(대한체육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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